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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07. 2024

'얘길 하다 보니'라는 신기한 주문

김민정의 『읽을, 거리』 북토크 후기

나 같은 일반 독자들에게 시(詩)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시인들이 시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지우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야 칼끝처럼 날카롭고 긴장감 넘치는 시가 완성되니까. 김민정 시인이 '시의적절'이라는 컨셉의 책을 매달 내기로 한 이유는 독자들이 시를 둘러싼 시인들의 생각을 함께 읽으며 시가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눈치채게 해주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맞았다.  


어제저녁 7시 30분 풍산역 근처 《당신의서재》에서 열린 김민정 북토크에 갔었다. 시의적절 시리즈의 첫 책이자 1월의 텍스는 김민정 편집자 겸 시인의 『읽을, 거리』는 '읽을거리'라는 당돌한 제목에 쉼표를 넣음으로써 뻔뻔함에서 벗어나고 아울러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시적인 무엇인가가 생겨난다는 생각에서 지은 것인데, 역시 제목 짓기의 달인인 김민정,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토크가 열린 '당신의 서재'는 큐레이션도 정답고 사장님도 멋진 곳이었다. 아내 윤혜자가 책꽂이에서 내 책(『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 살다 올게』)을 발견하고 좋아하자 사장님이 윤 작가님 책도 있었는데 팔렸다고 해서(『부부가 둘 다 잘 먹었습니다』) 놀라며 기뻐하기도 했다. 김민정 작가를 늘 돕는 유성원 차장님은 역시 어제도 한 구석에서 조용히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김민정 시인이 워낙 달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든 게 책과 사람 사이를 오가는 얘기이다 보니 원래 준비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얘길 하다 보니"라는 말 뒤에 나오는 내용들이 너무 다채롭고 신기하고 재밌었다. 얘길 하다 보니 박민규 소설가 덕분에 문예중앙 편집장을 덜컥 맡게 된 사연도 나왔고, 얘길 하다 보니 박찬일 셰프 겸 작가와 길고 긴 인연을 맺은 계기도 나오고, 얘길 하다 보니 고명제 시인이 데뷔할 때 얘기도 나왔고, 얘길 하다 보니 절벽을 뛰어오를 때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염소들 얘기까지 나왔다. '얘길 하다 보니'라는 주문만으로 이런 얘기들이 끊임없이 줄줄 나온다는 건 그만큼 김민정 주변엔 문학과 사람과 사랑이 넘치고 그의 마음이 뜨겁다는 증거다.


집에서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거리였지만 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모인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것인가. 곧 제 책이 나오니 저의 북토크에도 많이 와주시기 바랍니다. 책에 대해서 얘기한다는 건 결국 인생과 사랑, 그리고 이루고 싶은 것들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이니까요. 왜 갑자기 존댓말을 하냐고요? 책을 내기 직전의 작가들은 다 이렇습니다. 죄송합니다. 놀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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