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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10. 2024

그 남자의 편지 같은 시집

장석주 『꿈속에서 우는 사람』

 


장석주 선생이 문학과 사랑에 빠진 건 열일곱 살 때였다네요. 『문학사상』 창간호를 사서 가슴에 품고 절두산 성당으로 갔답니다. 장석주 시인이 편지처럼 보내주신 시집 『꿈속에서 우는 사람』을 읽고 있습니다.

해설을 쓴 류신 문학평론가는 권태와 우울의 시집으로 읽었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반대로 삶에 대한 호기심과 환희가 넘치는 시집입니다. 다만 그게 야아!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 '사는 건 피크닉이 아니라 노역이었어'라고 회상하는 정도라 그렇게 읽히는 거죠.


어머니의 기일에는 면도를 하고 순하게 살기로 마음먹는 시인은 어느 날은 상상 속 펭귄통신원이 되어 남극에서 해수면 온도의 변화를 걱정하기도 하고 한가한 대낮에는 커피 정도의 사소한 문제로 연인과 다투기도 하죠. 먼 곳에서 오는 것들 중에서 눈(雪)과 은하수와 두부를 좋아합니다. 그는 아무래도 새벽에 오는 두부가 그중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시에선가 두부는 새벽에 온다는 걸 다시 거론하면서 새벽에 오는 것들은 다 옳다, 라고 주장하고 있거든요.  


물론 시인은 갈아입은 바지의 중간쯤이 튀어나오는 건 무릎을 혹사한 흔적이라 안쓰러워합니다. 하지만 벚꽃이 필 무렵 통영에 가서 굴을 먹는 시인에게서 어찌 권태를 느낄 수 있나요. 벚꽃 끝물에 가서는 "벚꽃이 다 지니 올해의 슬픔은 끝났다, 열심히 살 일만 남았다, 라고 읊조리는 시인을.

남쪽으로 비행기를 몰고 귀순한 북한군 조종사를 따라 '나도 당신에게 귀순하고 싶었지만 나는 미완의 문장을 쓰고 늘 실패하는 사랑에 골몰했다'라고 쓰는 시인은 귀엽습니다. 그렇습니다. 꿈속에서 우는 사람은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밝은 얼굴로 세상을 탐험합니다. 이런 밝음과 어둠이 백 권도 넘는 책을 쓰게 만든 장석주의 에너지였을 겁니다. 그 남자의 편지 같은 이 시집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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