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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23. 2024

숨 쉬듯 시를 쓰는 시인

박연준의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일상을 그대로 글로 옮기면 참으로 시시해집니다. 하지만 일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반추하고 거기에 어떤 의미를 담아 응축시키려 하는 순간 글이 살아나죠. 그 느낌과 생각을 단단하게 뭉쳐서 시로 쓰는 사람들만 시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박연준 시인의 새 시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은 시인이 힘들 때나 기쁠 때나 한가하게 쉴 때조차 숨을 쉬듯 써 내려간 시들의 모임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치열하게 의무감으로 쓴 건 아닌 듯하고요.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부터 평생의 화두 같은 고민들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마다 종이 위에서, 자판 위에서 시가 탄생합니다.


가장 많은 생각은 사랑. 사랑이 무엇일까, 나는 사랑을 얼마나 낭비했나, 아, 어느 날 사랑이 사라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들. 그래서 시인은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이라 조약돌에게 묻고는 ’아직이요-‘라고 대답하는 돌멩이에게 안도합니다. 그동안 사랑을 낭비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썼고 그래서 내가 못 생긴 건 슬픔이 얼굴을 깔고 앉았기 때문이라고 투털대면서 말이죠.


하지만 사랑은 늘 곁에 있습니다. 남편을 생각하다 ’결혼이란 오른쪽으로 행복한 사람과 왼쪽으로 불행한 사람이 한 집에서 시간을 분갈이 하는 일‘이라는 구절이 떠올라 흐뭇해하고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당주에게 “너는 땅을 찢고 태어난 초록도 아닌데 어떻게 우리에게 왔니?”라고 기특해합니다. <저녁엔 얇아진다>라는 시를 보면 일상을 마치고 침대에 앉아 바지와 양말을 벗는 시인의 피곤한 삶이 나옵니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사소한 것들의 연속이지만 때로는 ‘무너지는 산을 등으로 막아야 하는 것도’ 필요할 정도로 엄청난 스트레스가 존재하는 게 인간의 삶입니다.


시인은 우리가 우리가 먹는 돼지고기가 얼마 전까지는 작은 돼지였음을 상기하며 ‘작은 죽음을 사고파는 일’이 과연 사람으로서 할 짓인가 반성해 봅니다. 그렇게 작은 것들에 마음을 보내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스마트폰과 노트북 때문에 ‘이제 누구도 혼자 있는 법을 알지 못한다’라고 한탄하게 됩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공해와 쓰레기들을 생각하면 지구라는 행성도 이제 얼마 못 가는 것 아닌가 하는 거시적인 걱정도 합니다. 그러다가 경주에 가서 고분을 보고는 ‘얼마나 큰 슬픔이길래, 무덤을 이리도 크게 만들었을까’라며 울었다는 고백을 읽으면 슬며시 웃음이 나오죠.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에서 시인은 오직 여자만이 시를 쓴다는 가정을 해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못하는 남자들에게 ‘당신이 어쩌다 좋은 시를 썼다면 그건 당신이 가진 여성성이 발휘되어 그런 것이다’라고 놀리는 상상을 합니다. 참으로 귀여운 상상이죠. 이 시집은 박연준의 그런 귀여운 상상부터 크고 작은 걱정들, 기차를 굴릴 정도로 힘이 센 형용사들, 오래된 만우절의 기억까지 빼곡히 들어 있는 비밀 수첩 같은 책입니다. 아무 데나 펼쳐봐도 시인의 다정한 걱정과 한숨, 순진한 기쁨들을 발견할 수 있으니 어서 서점에 가서 이 책을 집어드세요. 심지어 맨 끝에 붙어 있는 신미나 시인의 발문조차도 딱딱하지 않고 정다워 잘 읽힙니다. 한심한 감탄부터 내밀한 속마음까지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이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 이글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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