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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24. 2024

초겨울에 어울리는 사진 전시회

명동 피크닉 전시회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

예전에 어른들은 사진기를 목에 두르고 다니는 사람을 좀 ’논다니‘로 보는 경향이 있었죠. 20세기 초엔 일본에서도 사진이 ’음주, 도박, 여자에 이어 돈이 많이 드는 놀이‘라고 인식되었던 모양입니다. 아들의 15살 생일에  실수로 카메라를 선물했다가 이내 사진에 미쳐버린 아들을 보고 그 아버지도 난감해했다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아들에게 더 좋은 카메라를 사줬고 덕분에 아들은 일본 최고의 포토그래퍼로 성장했습니다. 명동의 복합문화공간 피크닉(piknic)에서 열리는 일본 사진작가 우에다 쇼지의 전시회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Ueda Shoji Theatre of the Dunes)』에 다녀왔습니다. 목요일 아침에 만난 정요숙 선생이 아내와 저에게 티켓 두 장을 선물해 준 덕분이었죠.


그는 약관 23살에 ’우에다조(植田調)‘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뜻도 모르면서 ’쪼가 있다‘고 할 때 쓰던 말, 영어로 ’스타일‘이 바로 이거더군요) 일본 사진계에서는 파란을 일으킨 모더니스트였습니다. 지금 보면 싱거울 정도로 평범해진 구도와 기법이지만 당시에는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하긴 남들보다 앞서 간 사람은 누구나 ’칼럼부스의 달걀‘이니까요.


저는 사진은 잘 모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행복은 좀 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에다 쇼지는 정말 행운아라고 할 수 있죠. 우에다는 평생 프로보다는 아마추어로 남길 원했다고 합니다. 도쿄에서 프로 사진가로 일하게 되면 여성의 누드와 광고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다며 고향인 돗토리 생활을 고집했답니다. 그는 평생 고향인 돗토리현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는데, 특히 돗토리 사구(鳥取砂丘)를 배경으로 한 연출 사진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에 ’모래극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죠.


저는 꼬마들을 나란히 세워 놓고 찍은 사진이 정말 좋았습니다. 자연스럽고 세련된 사진보다 이렇게 작가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진엔 은근한 유머와 애정이 들어 있습니다. 말년에 아들의 권유로 패션 사진을 찍을 때의 에피소드도 재밌습니다. 서양 모델들을 데리고 바닷가에서 패션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제작비가 모자라서 꾀를 냈답니다. ”여기 와서 모델을 하면 일도 하고 수영도 할 수 있다“는 달콤한 말로 꼬신 거죠. 그런데 정작 촬영을 해야 하는 날 걔네들이 정말로 다 수영을 하러 가버려서 난감해지자 우에다는 빈 옷걸이를 모래사장에 꽂아 놓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상황에 맞춰 작품을 만들다 보니 스토리텔링이 더 풍부해진 거죠.


이런 이야기는 피크닉에서 제공한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들었는데 마침 오디오 가이드 목소리로 박혜진 아나운서(라고 쓰고 다람출판사 대표라고 읽는다)가 나와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피크닉은 들어가는 입구도 재밌습니다. 직접 가보시면 압니다. 전시회가 끝나고 나오면 보이는 의자나 벽도 예사롭지 않고요. 저는 아내가 밖에 나와 포즈를 취하라고 해서 벽 앞에 서 있다가 괜찮은 사진을 한 장 건지기도 했습니다. 바람이 찹니다. 얼마 안 남은 11월 초겨울의 정취를 특별하게 기억하고 싶다면 이번 주엔 명동에 한번 나가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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