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 작가를 흠모한 사람들

이문구 작가 23기 추모식에서 편성준이 쓰고 읽은 글

by 편성준

영화감독 박찬욱은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 출연해 이문구 작가의 『관촌수필』을 인생 최고의 문학 작품으로 꼽았습니다. 한국적인 정서, 인물 성격 구축, 특히 문장력에서 한국에서 ‘으뜸’인 작품이라며 극찬한 바 있습니다. 존 르 카레나 조셉 콘래드 등 서양 작가들에 심취해 있다고 짐작되던 그의 입술에서 ‘이문구’라는 이름이 흘러나올 때의 놀라움은 쉽게 잊히지 않을 듯합니다. 박 감독은 창작의 원천 중 하나로 이문구 작가를 언급하며, 문체의 아름다움과 정서에 높은 평가를 내렸습니다. 아울러 『관촌수필』은 박찬욱 감독이 영화로 만들고 싶어 하는 한국문학 작품 중 하나지만, 동시에 너무나 아름다운 문학예술이라 영화로 만들기보다는 그대로 보존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는 양가적인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죠.


시인 김갑수는 KBS 라디오에 출연해 이문구 작가의 『관촌수필』을 소개하며 “이문구의 글은 해학적 사설의 만연체가 거의 마지막으로 보존된 문체”라고 평했습니다. 그는 “이문구라는 관문을 통과하면 언어 세계가 달라진다”면서 “한 차원 높게 우리 언어를 구사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문구를 읽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문구 선생이 나온 서라벌예대 문창과, 지금의 중앙대 문창과 후배이기도 한 소설가 정지아는 보령 ‘원도심 어울림센터’에 와서 한 강연에서 이문구 선생 작품들에 대한 애정을 고백했습니다. 특히 그는 “선생의 작품을 읽어보면 ‘왜 이문구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면서 자신이 도시에서 끝없는 비교와 경쟁 심리에 시달리고 있을 때 이문구 선생은 시골에서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라고 말하며 작품을 넘어 선생의 인간적인 면모까지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밖에도 김민정 시인은 대전 버찌책방에서 열린 『역지사지』와 『말이나 말지』 출간 기념 북토크에서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을 묻는 질문에 “저는 이문구 선생 작품처럼 재밌는 소설을 좋아해요.”라고 말하더군요.


이처럼 누군가는 ‘한국 문장의 으뜸’으로, 누군가는 ‘언어 세계가 달라지는 관문’으로, 또 누군가는 ‘마음이 따뜻한 작가’로, 누군가는 ‘재밌는 이야기꾼’으로 이문구 선생을 기억합니다. 표현은 달라도 결론은 하나입니다. 이문구 선생은 작품으로 한 시대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작품 밖에서 사람을 품고 문단을 두루 아우르며 ‘문학이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몸으로 남긴 ‘작가들의 작가’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작가 이문구의 고향인 보령에서 살고 있는 저 역시 행운아입니다.


이 글은 지난 2월 25일 충남 보령 관촌마을에서 열렸던 이문구 선생 23주기 추도식에서 제가 읽었던 글입니다. 이 행사를 주관한 이문구 기념사업회 집행위원들과 회의를 하다가 제가 "문학계·문화계 인사들 중 이문구 작품을 인생책으로 꼽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의 사례를 좀 찾아서 글로 쓰고 당일 행사에서도 낭독하면 어떨까요?"는 의견을 냈다가 쓰게 된 글입니다. 저는 박찬욱 감독과 김민정 시인이 이문구 작가의 팬이라고 얘기하는 걸 듣고 참 멋진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 행사는 보령에서 나고 자란 황선만·한흥호 두 사람이 시작하고 뜻있는 여러 인사들이 모여 결성한 이문구 기념시업회의 첫 사업이었습니다. 상임공동대표인 소설가 서순희 선생이 관촌마을비 앞에서 추모사를 읽었고 이어 이문구 선생의 유해를 뿌린(고인의 유언대로) 부엉재로 올라가 보령문화원 한흥호 사무국장과 충실한 독자 윤용현 선생이 이문구 소설 중 일부를 낭독했습니다. 이어 저도 위의 글을 소리 내 읽었고요. 앞으로 기념사업회에서 이문구 선생을 기리고 그의 책을 읽히기 위해 많은 일을 할 것입니다.


이문구 선생은 두말할 필요 없이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소설가 중 한 분이죠. 1970~80년대 그가 발표한 소설들은 그야말로 눈이 부신 산문의 경지입니다. 충청도 사투리가 지닌 유머를 이문구 작가처럼 잘 보여준 경우가 또 있을까요? 이 분이 아니었다면 충청도 사투리, 특히 보령 사투리가 역사 속에 그대로 묻힐 뻔했습니다. 매월당 김시습을 다룬 소설의 엄정한 역사 인식은 또 어떻고요. 이문구 선생은 남로당 보령군 책임/총책이었던 아버지와 둘째·셋째 형 모두 전쟁을 전후로 피살되는 비극을 겪었고, 자신도 진보 진영의 인사였지만 작가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진보와 보수 모두를 아우르고 연결하는 통 큰 문인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작품 『관촌수필』『우리동네』『유자소전』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매월당 김시습』등을 읽어 보십시오. 좋은 작품엔 세월의 먼지가 쌓이지 않습니다.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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