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여자와 살고 있습니다

6년 전 아내의 프로필

by 편성준


15년 전 만우절에 신사동에서 만난 사람

바에서 앱솔루트 보드카 두 잔을 따라 주었던 사람

웃음소리가 크고 높았던 사람

나도 모르던 나를 발견해 준 사람


시어머니를 좋아했던 사람

모르는 사람에겐 까칠한 사람

아는 사람에겐 간과 쓸개를 빼주는 사람

논리적으로 화내고 감정적으로 공평한 사람

돌아설 땐 냉정한 사람


단돈 2백만 원 들고 상경한 사람

신문사와 벤처회사를 다녀본 사람

삼 분 안에 옷 두 벌을 고르는 사람

글을 빨리, 잘 쓰는 사람

사진도 제법 잘 찍는 사람


여러 가지 요리를 한꺼번에 하는 사람

뭘 배우러 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

뭘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

남편에게 모텔 가자고 하는 사람

남편에게 궁합 보자고 하는 사람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사실은 두려움이 많은 사람

칼 나오는 영화를 못 보는 사람


성북동 소행성을 기획한 사람

토요식충단을 기획한 사람

독하다 토요일을 기획한 사람

공처가의 캘리를 기획한 사람

매일매일 밥상을 차리는 사람

혼자 있을 땐 라면 끓여 먹는 사람


남편의 퇴직에 박수를 쳐 준 사람

남편의 책을 기획한 사람

돈이 없어도 일단 저지르는 사람


남편에게 연극을 보러 가자고 한사람

보령으로 놀러 가자고 한 사람

보령으로 살러 가자고 한 사람

두 달 걸리는 집수리를 세 번이나 한 사람

바닷가 스타벅스에 와서 책을 읽는 사람


(*6년 전 만우절에 썼던 글을 오늘 우연히 발견해 보령 이야기를 조금 더 쓰고 아내 사진 중 괜찮은 걸 고르려고 했으나, 아내가 보는 사진마다 죄다 반대해서 그냥 제가 좋아하는 대천해수욕장 사진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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