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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늘 Oct 03. 2023

낙지인생

장춘익 교수의 <나의 작은 철학> 

우연히 알게 된 책 장춘익 교수의 <나의 작은 철학>에 실린 여든 편의 짧은 글들은 따듯하고 예리할 뿐 아니라 잘 읽힌다. 한 철학가의 자유와 공존에 대한 사유가 이렇게 가독성이 높을 수 있다니! 책을 이루는 여섯 개의 장은 각각 철학, 덕, 자유, 사회, 시장 그리고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다. 


첫 글 "요리철학 혹은 철학요리"부터 감이 좋았다. 두 장 반 만에 저자가 글을 잘 쓴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글에 담긴 저자의 태도는 그에 대한 나의 신뢰도를 높였다. 달리 보이는 것에 머물 수 있어야 달리 생각하기가 시작된다고 말하는 글은 어딘가에 '머무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임을 체감하게 했다. 그 글만 하더라도 나는 처음 읽으면서 받은 지적 자극에 머물지 못했다. 그나마 한 달 뒤 종이에 연필로 표시했던 부분을 다시 읽으며 머물기를 새로이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을, 더 만나고 싶은 사람을 이곳저곳에서 아름답게 그려낸다. 

내가 삶에서 만난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러면서도 그것이 맹목적으로 그저 내 친구, 내 애인, 내 부모이기 때문이 아니라 삶의 수고로움과 타인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타인의 매력을 읽어냈기 때문이라면, 그것이 성숙함의 표시다. 사막에서의 물 한 잔이 아니더라도, 친구가 그저 덤덤하게 건네준 음료나 나에게 보인 따듯한 미소를 고맙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성숙한 태도인 것이다. 그렇다고 성숙함이 수동적이고 주어진 여건에 적응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연성과 유한성을 삶의 요소로써 직시하고, 그 바탕에서 가능성을 숙고하고 행위하는 것이다. 매력은 사랑받을 수 있는 능력이지만, 성숙함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성숙함에 관하여"
사랑의 핵심은 오히려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대의 매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매력을 볼 수 있는 능력에 있다. -"사랑과 도덕의 변증법"


에필로그 "낙지인생"에서 저자는 공부를 통해 앎을 즐기고(知樂) 즐거움을 아는(樂知) 경지에 조금씩 가까이 가리라고 막연하게 희망했다고 고백하는데, 나도 덩달아 지락과 낙지의 꿈을 품어본다. 이렇게 아름다움과 꿈을 건네는 글이 풍성하게 실려있으니 내가 친구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게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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