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스타트업에 대한 상당히 편협한, 그래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 법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오늘의 주제는 '스타트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모험 자본이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이다.
스타트업에 대해서는 다양한 정의가 있다.
"신생 창업 기업을 뜻하는 말로,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기업"
"극심한 불확실성 속에서 신규 제품/서비스를 만들고자 하는 조직"
"해결책이 명확하지 않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영역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기업"
"반복적이고 확장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
"매우 빠르게 성장하도록 디자인된 기업"
"IT 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기업"
그러나 이 정의들에는 다양한 문제가 존재한다. '혁신적'이라는 말은 어떻게 정의 내릴 것이며, '반복적'이고 '확장 가능한' 것의 기준은 무엇이며, '극심한 불확실성'은 사업적으로 불확실한 것인지 밥 먹을 돈까지 없어야 하는 것인지, 해결책이 명확하지 않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어떤 기업이나 마찬가지인데 왜 우리는 모든 기업을 스타트업이라고 부르지는 않는 것인지 등등. 나는 이 문제들이 스타트업을 자본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아서 생겼다고 생각한다. 자본의 관점에서 스타트업을 정의 내리면 분명해진다.
스타트업은 모험 자본이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이다
식당 프랜차이즈이든, LLM 기반의 대화 생성 AI 기업이든 모험 자본이 투자할 수 있다면 모두 스타트업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카카오벤처스가 왜 허닭에 투자했는지, 동네 식당은 왜 스타트업이라 불리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럼 모험 자본(a.k.a. Venture Capital)의 속성은 무엇일까? (엔젤 투자자를 제외한) 모험 자본은 정부, 기업 등(LP)에게 일정 수익률을 약속하고 펀드를 만들어 운용하면서 관리 보수와 성과 보수를 받아서 수익을 올리는 비즈니스 형태이다. 따라서 모험 자본에게는 약속한 수익률을 지키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8년의 운용 기간을 갖고 있는 100억짜리 펀드의 기준 수익률이 연 9%라면, 만기 시에 이 펀드는 원금의 2배인 200억짜리가 되어있어야 한다. 최소 200억은 넘어야 기준 수익률도 지키고 성과 보수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 펀드에서 투자한 기업 중 평균적으로 1/3은 망하고 1/3은 현상 유지할 뿐이라는 것. 그렇기에 나머지 1/3이 전체 펀드의 수익률을 이끌어야 한다.
핵심은 여기다. 산술적으로는 전체 투자 기업의 1/3이 6배씩 성장해 주면 전체 수익률인 200%를 맞출 수 있지만 실제 투자 시에는 좀 더 보수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피투자 기업이 최소 10배 이상 성장할 수 있다고 기대될 때에 투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험 자본이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은 향후 5~8년 이내(펀드 만기)에 10배 이상의 성장을 할 수 있는 기업을 의미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자본의 관점에서 스타트업에 대한 정의다.
그러면 스타트업의 입장에서 투자를 받기 위해(=스타트업으로 인정받기 위해) 할 일은 명확해진다. 5~8년 이내에 10배 이상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과 근거를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것. 미지의 대륙으로 떠나 엄청난 황금을 가져다주겠다는 말로 이사벨 여왕을 설득했던 콜럼버스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