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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플레이와 발리

by 아는사람 최지인

2025년 4월과 5월의 행복했던 순간들 기록



2025.04.22. 콜드플레이 내한공연


작년 연말쯤이었나, 콜드플레이가 내한 공연을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은 순식간에 나를 8년 전으로 데려갔다. 2017년, 나는 판교의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창업 교육을 받으며 꿈 많은 co-founder 4명을 모아 창업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면에서 부족했지만 열정만은 가득했던 시기였다. 우리는 콘서트 구독 앱을 만들었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매달 구독료를 내면 오늘로부터 일주일 간의 공연들(주로 홍대 인디 공연)을 무제한으로 갈 수 있던 서비스였다.


나는 공연과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한다며 합정으로 이사했고, 매일 홍대합정 인디씬을 기웃거렸다. 컴퓨터공학,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실제 서비스를 만들어본 적 없던 동료들은 실수와 개선을 반복하며 한 땀 한 땀 앱을 만들었다. 그렇게 약 4개월 간의 서비스 기획&개발 기간을 거쳐 데모데이에 섰을 때 마지막으로 띄웠던 영상이 콜드플레이 공연 영상이었다. '올해 콜드플레이가 처음으로 내한 공연을 왔습니다. 다음 콜드플레이 내한 때는 저희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공연 서비스가 돼서 티켓도 팔고 라이브 스트리밍도 하겠습니다.'라고 천명하면서.

그때 약 30팀 정도가 발표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스타트업캠퍼스 총장이었던 카카오 김범수 의장님이 유일하게 질문했던 팀이 우리 팀이었다. '멜론이 티켓도 팔고 라이브 스트리밍도 하는데, 이 시장이 뒷거래도 많고 인프라 비용도 많이 들고 참 어려운 사업이다. 그 점 잘 파악하고 사업하시면 좋겠다.'라고 말씀해 주셨고, 나는 '멜론은 저희 경쟁사입니다. 향후 멜론을 인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아주 건방진 이야기를 했었다.


그 후로 8년, 콜드플레이가 다시 내한 공연을 오기까지 나는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멜론을 인수하겠다 했던 콘서트 앱은 창업 1년 만에 처참히 실패했고, 블록체인에 열정을 갖고 임했던 3년은 '블록체인은 의미 있는 기술이지만 결국 코인이구나'라는 결론을 갖고 업계를 뛰쳐나왔으며, 실물과 데이터를 다루는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다며 시작했던 향수 구독 사업은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규제에 영업 정지를 당하며 폐업했다. 그러다가 내가 했던 경험을 100%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인 벤처캐피탈리스트로서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던 와중, 나에게 다시 한번 콜드플레이가 찾아온 것이다.

8년 간 많은 것들이 변했다. 콜드플레이 공연을 편하게 갈 수 있는 경제적 여유도 생겼고, 함께 공연을 즐길 아내도 있고, 무대 위의 창업자에서 무대 밖의 투자자로 위치도 옮겨 왔다. 그런 많은 변화에도 Fix you는 여전히 좋더라.


8년이 될지 몇 년이 될지 모르지만 다음 콜드플레이 공연 때는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변해있을까. 그럼에도 또 여전한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스타트업에 대한 열정과 예술에 대한 사랑만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나였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아내도 여전히 함께.



2025.04.30. ~ 05.05. 발리 여행


작년에 신혼여행으로 우리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5일간 100km를 걸었는데 하필 5일 내내 비가 내려서 엄청나게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는 발리, 하와이 등 휴양지에 가서 아주 편하게 쉬고 온다는데 우리는 사서 고생을 한 셈이었다.

물론 너무 즐거웠고 다음엔 800km 풀코스를 완주하자 다짐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 번은 같이 휴양지 여행을 가고 싶었다. 그러던 중 생각난 곳이 발리, 언젠간 꼭 가보고 싶던 여행지였다. 다녀왔다는 친구들이 인생 여행지로 꼽는 경우도 많았고, 좀 오래전 드라마지만 '발리에서 생긴 일'이라는 인기 드라마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왜인지 혼자 가기는 다소 꺼려져 가지 못하고 있던 여행지였다.


발리 여행은 다 좋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만타 가오리를 만난 순간이었다. 만타는 최대 길이 약 8m의 대형 가오리인데, 순하고 침도 없어서 인간에게 안전한 가오리다. 그렇지만 조류가 급한 곳에 살고 개체 수도 많이 없어서 전설의 포켓몬 같은 느낌의 가오리다. 발리에서도 만타를 보기 위해서는 본섬에서 렘봉안이라는 작은 섬으로 이동해야 한다. 우리는 5박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만타를 보기 위해 2박을 렘봉안에 투자했다.


아침에 출발할 때 오늘은 만타 볼 확률이 높다고 해서 기대를 하고 가긴 했지만 이렇게 바로 만타를 만날 줄 몰랐다. 갑자기 예정되어 있던 포인트가 아닌 다른 포인트로 이동을 하더니 거기에 만타가 있었다. 그것도 5마리나. 물에 들어가자마자 아래를 보니 우주선 같은 만타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거대한 동물이 도망가지도 않고 얌전히 유영하고 있는 모습은 순간 마치 꿈속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2025년 상반기의 행복했던 순간 기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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