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시간 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8월부터 몇 건의 투자를 연달아 진행하며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를 대봅니다. 다행인 것은 지난 세 달여 간이 제가 vc로 일한 시간들 중 가장 '투자'라는 것에 밀도 높게 집중하여 일한 시간이었고, 그를 통해 투자와 VC업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할 수 있었다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 고민들에 대해 적어보고자 합니다.
스타트업을 돕는 방법
저는 UFC를 좋아합니다. 최근 UFC에서 2연승을 하고 있는 고석현 선수의 스파링 파트너인 김상욱 선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요. 김상욱 선수도 UFC를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저도 얼른 더 잘해서 UFC에 가고 싶어요' 같은 말이 나오리라 예상했는데, 그가 한 말은 '내가 지금 석현이 제대로 도와주고 있는 것 맞나 고민이 된다'였습니다.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있는 고석현 선수를 더 잘 도와주고 싶은데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밤에 따로 나와 운동한다는 내용이었는데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투자한 스타트업을 제대로 돕기 위해서 뭐 하나라도 노력하고 있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름 시간을 내어 뭔가를 했던 것 같긴 한데 그게 실질적은 도움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방향이든 진짜로 도움이 되기 위해서 더욱 고민하고 정진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스타트업을 애정하는 것
스타트업을 제대로 돕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저는 '애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저는 정을 주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타입입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상대에게 깊은 애착을 느끼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정을 주는 것을 경계하기도 합니다. 그런 저의 성향과 투자자라는 포지션이 결합되어, 지금까지는 제가 담당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에게 약간의 심리적 거리를 두며 객관적인 입장을 전달하려 노력했었는데요. 정확한 계기는 모르겠지만 요즘에는 스타트업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투자를 했던, 하지 못했던 그들에게 진정한 애정을 가지게 됐고 실제로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꽤 오랜 시간 돌아온 것 같지만 그것이 창업자 출신 vc가 가질 수 있는 본원적인 경쟁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펀드의 수호자
스타트업을 돕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또 중요한 것은 타인의 자본을 운용하는 GP로서 펀드를 보호하고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이를 명확히 깨달은 몇몇 사례가 있었는데요. 스타트업이 추진하려는 방향이 사업적으로는 성장 가능성 있지만, 펀드의 규약이나 투자계약과 맞지 않을 때 명확한 의사 표시를 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줄다리기와 이해관계 충돌이 있었지만 그런 혼란스러운 와중에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해 준 것은 vc는 펀드의 이익을 수호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다만 펀드의 이익이냐 스타트업의 이익이냐가 아닌 모두의 이익이 일치되는 방향으로 조율을 해나가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발견했습니다.
투자=신뢰자본의 교환
VC 하우스에서 심사역으로서 '투자'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을 신뢰자본의 교환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회사는 투자심사를 아주 꼼꼼하게 진행합니다. 보고서에 있는 숫자를 검증하고, 사업의 향후 가정들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스타트업이나 타 투자사의 기준이 아닌 저희만의 기준으로 재해석합니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2차, 3차에 걸쳐 보완 절차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그런 객관적인 절차에도 불구하고 투자라는 행위의 본질은 그 심사역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즉 심사역의 신뢰자본을 투자금으로 치환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보고서의 정합성이 완벽하고, 사업이 유망해 보이더라도 이 투자심사를 진행하는 심사역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모든 것은 무의미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심사역은 항상 모든 업무에 있어 신뢰자본을 쌓아 가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