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고양이 사진 많음주의
오래전 마음을 주었던 제자에게 연락이 왔다.
사회인이 되니 관계의 농도와 거리를 조절하는 것은 멋진 어른이 갖춰야할 능력 중 하나였다. 너무 연연하지 않고 너무 깊어지지 않으면서 상처 받지 않는 것. 이런 마음가짐은 '부담스럽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꽤나 도움이 됐다. 스쳐지나가는 인연들이 때로는 그 어느때보다 진하고, 또 자연스레 소원해지기도 했다.
스팸메일로 가득한 메일함에 익숙하고 낯선 메일이 한 통 왔다.
사람에 대한 깊은 애착이 있는 편이 아니였지만 그 때의 아이들은 유독 합이 맞았던 아이들이였다. 그 연결 고리 중 하나는 아마 고양이였을 지도 모르겠다. 당시 나는 동물권에 한참 관심이 있었던 시기였고,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동물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 좋아하는 마음이 '애완'과 '유미'를 위한 것이 아닌 생명체에 대한 돌봄과 책임으로 번져나가길 바라며 동물보호교육을 진행했었다. 고양이를 돕자고 어설프지만 신나게 나섰고, 그때의 나와 아이들은 따뜻했고 열정적이였고 순수했다. 과정의 즐거움에 함께 도취되어 나도, 그들도 일들을 벌였다. 그 당시의 나를 기억하던 이들은 '원래 그렇게 열정적인 분이지 않았냐'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여전히 꽤 무기력하고 게으른 사람이다. 그때의 동력은 단순히 즐거움과 무목적성에서 발현된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다음해부터 쪼그라들었다.)
다시.
세 녀석과 옛동네의 까페에서 자리를 만들었다. 지금은 나보다 훌쩍 크고 훨씬 바빠진 아이들은 그대로면서도 낯설었다. 각자의 꿈과 고민거리를 안고 있는 싱그러움이 부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성우 아카데미에 다니는 A, 매일 아침 한 시간씩 러닝을 한다는 B, 빨리 이 구간을 지나가고 싶다는 C까지 모두 여전히 반듯하고 따뜻하게 시간을 눌러담았다. 나와 마주했던 때 머금던 꿈을 여전히 안고 있었다. 언론에 나오는 것처럼 함몰된 10대의 모습이 아니라 여전히 각자의 더듬이를 뾰족하게 세우고 있는 것 같아 몽글몽글해진다.
'푸코랑 두부는 잘 있죠? 저희가 작게 돈 모아서 준비했어요.'
그들의 기억 한 파트에 내가 담겨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던 내게 녀석들은 작은 상자 두 개를 건넸다. 상자 안에는 고양이 컵 두개가 들어있었다. 이거 원 행여나 깨질까 사용할 수나 있으려나. (김영란법 시대의 사람답게 이런 값진 선물은 처음이였다.) 학업으로 바쁜 고등학생 아이들을 먼저 보냈다. 행복하게 살다가 공기가 차가워지면 다시 만나자며 인사를 나눴다. 다음 일정으로 가던 길 '제가 그렇게 그 때 착했어요?'라는 A의 질문에, '단연코!'
오늘은 마침 세계 고양이의 날이였기에 아껴두려던 고양이 컵을 꺼내들었다. 전세계의 고양이와, 그들에게 마음써주는 이들 모두 따뜻한 날이였길 바랐다.
덧. 그 때 아이들이 돌봐주었던 고양이가 두 번이나 보은을 했다. 죽은 쥐로.
덧. 그 시기에 식중독이 돌아 결국 고양이를 오래 돌보지 못했다. 다들 마음아파 했으나, 우리가 돌봐줄 수 있는 동안 만이라도 배부르게 따뜻하게 사는 걸 목표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