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여름이 왔다.
경북의 포도가 익어가는 동네,
길죽한 도로와 매시간 KTX와 열차와 경부선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동네
내가 사는 은평구처럼 초초 고령화 시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
시내 중심가 1층에 즐비하고 밤이 되면 두배가 넘는 노래방들의 풍경들
나는 24년 이맘때 지독히 더운 여름을 경험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지방 구도심의 한 상가의 활성화 사업 PM을 맡아 지방에 내려갔다.
2016년부터 소상공인 시장진흥공단의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서울의 대형시장의 특성화 사업에서 컨설턴트로 활동한것들이 계기가 되었다.
왜 이 일을 했냐면 먼저 PM이라는 직함이 눈길이 갔다. PM이라는 직종은 IT계열에서는 흔히 쓰이는 직종이나 운영인력이라는 말로 이 계통에서는 아직 정착되지 않은 직종이다.
IT계열에서는 권한과 책임이 막중하여 상당히 필요한 직종이나, 시장의 활성화사업을 대충 아는 나로서는 과연 프로젝트 매니저의 권한과 역할이 존재하는 곳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내심 이제껏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의 소상공인 컨설팅을 할 수 있겠거니 했지만 계약기간을 절반도 못 채운채 일을 그만 두고 말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해당상가의 다음 사업에 대한 의지가 없었고, 구조적으로도 어렵기 때문이었다.
구체적인 IT와 컨설팅을 오래한 경력때문에 소진공의 업무스타일과 시장상권활성화 사업에 대해 이해가 적었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복잡한 사업구조와 비효율적인 사업 진행방식 그리고 발주권을 둔 갈등때문이었다.
시장특성화 사업은 전통시장과 상점가를 활성화하고, 소상공인의 자생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노력의 일환이다. 특히 내가 있던 지역에서는 점점 인구소멸과 도심의 성장동력이 떨어지는 지방의 골목상권의 발전을 위한 사업이기도 했다.
2024년 전통시장 및 상점가 활성화를 위한 시장 특성화사업의 예산 규모는 약 5,370억 원이다. 이는 전년도에 비해 1,616억 원이 증액된 금액으로, 시장 특성화사업은 전통시장과 상점가의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포함하고 있다.
그 중 첫걸음 기반 조성사업은 기본시작이 되는 사업으로서 상권의 활성화를 위한 결제편의, 안전, 위생환경, 상인역량, 홍보마케팅 등의 기본 사업으로 관주도의 특성화로 구성되어 있다.
“2대 역량강화 및 3대 서비스 강화” 등의 특성화 캐치프레이즈가 바로 이것이다.
재래시장은 기본모델에서 못 미치는 시장의 상권환경을 개선하는데는 이러한 성과위주의 특성화 사업은 일견 효과적일 수 있으나 재래시장이 아닌 상가중심의 길거리 상권을 특성화하기에는 너무 획일적이어서, 적지 않은 예산이지만 쓸 예산이 없다는 말도 현장에서 나오기도 한다.
말로는 상인과 고객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여 지속 가능한 성과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지역 경제활성화와 안전한 쇼핑 환경 제공을 목표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한정적인 예산으로 현재의 시장활성화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관에서 제시하는 천편일률적인 사업구성을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이해관계자가 얽힌 복잡한 사업추진구조도 사업을 지체하게 하는 원인중 하나다.
공무원들과 공적 조직들은 모든 업무가 세칙이나 절차를 세운다. 실제 이것은 결과에 대한 면피의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6자협력사업이라는 복잡한 구조에서 이러한 과도한 절차에 대한 부담은 일정의 지체로 이어진다.
총 사업예산은 대략적으로 연 2억-3억정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각각 일정비율로 예산을 분담하는 매칭펀드 방식으로 재원이 조성된다.
일정상 사업단이 직접 사업을 수행하는 경우보다는 외부에 용역을 맡겨 용역을 주는 형태로 사업을 수행할 수 밖에 없어 외부 민간업체의 선정 및 계약을 하는 소위 “발주권”을 둘러싼 갈등구조가 만연해 있다.
실제 사업의 성과물은 상인회가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이에 영향력을 제한하여 사업단은 오히려 발주에 대한 외압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상인회의 외압은 당연한 뿐더러, 심지어 공무원까지 외압의 주체가 되는 경우도 있다.
가령 특성화 사업의 신청주체는 지자체인데, 특정 민간업체가 사업계획서 도움을 준 경우 이후 도움을 준 민간업체를 밀어주려한 정황이 있는 지자체도 있다.
사업예산은 지방 균형발전을 위한 소중한 세금이 재원이 된다. 세금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과 주체가 되는 상권의 주체인 상인회의 역량에 대한 평가가 시급하다고 본다.
중소벤처부의 정부 기술화 사업(R&D)을 지원하는 사업에서는 사업계획서가 좋더라도 연구인력이 없는 업체를 선정하지 않는다.
시장 특성화사업은 단순 현수막을 걸어주고, 도로를 정비해주는 인프라 사업이 아니다. 상권의 특성을 활성화 요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그 특성을 잘 캐치하고, 활성화 장점으로 만들기 위한 소프트웨어 적인 사업으로 사업이 구성되어야 한다. 관주도의 캐치프레이즈형 사업구성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소진공이 관리기관으로 선정한 기관의 운영또한 문제이다. 24년부터 첫걸음 기반조성사업은 1인 PM체제로 관리기관이 중심으로 전국의 21개의 첫걸음 시장의 사업을 운영한다.
문제는 지나치게 관리적으로 1인 혼자 있는 상황에서 과도한 증빙을 요구하여 정작 PM이 신경써야 할 프로젝트 관리는 먼산이다. 하루종일 근태증빙, 특근증빙, 품의 영수증 원본 증빙등 모든 것을 증빙으로 소모해야 하는 하루일과에 지쳐 정작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문제에 대해 신경쓸 시간이 없다.
내가 영수증 관리하러온 회계직원인지 사업담당자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본말이 전도되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정작 써야 할 업무추진비에 사업단과 시장상인과의 2자간의 업무추진비는 인정되지 않는다. 내 경우 상인회 집행부를 소집하여 커피값을 냈다가 환수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나름 소통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세칙상 그렇다고 하니 내가 내 돈 써가며 소통에 내가 신경을 써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또한 관리기관의 직원들이 평균 30대의 젊은 직원이 이제 60이 다가오는 지역의 PM에게 지시사항이라고 지나치게 관리적으로 대하는 것도 감정소모가 많다. 게다가 상인회는 나름대로 PM을 상인회의 매니저쯤으로 생각하고, 자신들의 직원처럼 대하니 그것도 고충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고장에 힘써달라고 친절하게 대하지만 점차 그들의 텃세아닌 텃세를 견뎌야 한다. 가령 대부분 사업의 단위사업들(위생, 환경, 결제)의 예산규모가 어느정도 되니 수주업체의 도움으로 사업계획서를 쓴경우가 많다. 이러한 소위 지역에서 밀고 밀어주는 유착구조를 낯선 PM이 오면 이 텃세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상인회의 시각과 관리기관의 시각에 혼자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PM의 이러한 고충은 사업초반에 그만두는 PM이 많았다.
시장 특성화사업은 지역 균형발전차원에서 의미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중앙정부에서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정책이 모든 지역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사업수행구조를 구성하는 공단의 세심한 현장인력에 대한 행정간소화와 배려가 필요하며, 상인회의 기본적인 역량제고와 함께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맞춤형 과제를 수립하여 상권과 배후 주민들의 필요와 요구를 이해하는 지자체의 책임있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