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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호 ; 내 아버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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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


올해 아버지는 90이 되셨다.

환갑은 하지 않으셨고, 칠순은 좀 생일상보다 나름 규모있게 한것 같고, 팔순을 지나 올해 구순을 맞이 하셨다.


아버지는 가족의 생일을 한번도 챙긴적이 없다. 그러나 정작 당신의 생일에 가족에게 서운한 일은 꼭 쟁여놓았다가 언제곤 느닷없이 화를 풀곤 하셨다.


한번은 생일상이 마음에 안들어 혼자 부산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80평생 아버지의 포로였던 어머니는 작년에 해방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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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아버지는 내게 구속이고, 압박의 느낌이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아무 표정이 없다가 미간이 살짝 찡그러지면서 깔아보는 당신의 미간이 떠오른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때도 애틋함 한번 보이지 않았던 양반, 그 오랜 세월에도

그 오랜 시간 자신의 옆에 묵묵히 있어주던 어머니가 가셨음에도 아버지의 감정은 전혀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그런 아버지가 불편했고, 어머니가 가신이후로 형에게 연락해서 안부를 확인하는 정도로, 아버지를 찾아 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난청이 없을때 우리부자는 하루에 통화를 한시간 이상하는 이상한 부자였다.


뭐 살갑게 이야기하는 그런 사이는 아니고, 각자 이야기하다보면 내 얘기, 당신 이야기를 하고 싶은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들이다.


전화로 서로 대화하는데, 치매노인 둘이서 서로 다른 이야기 하는 꼴이었다.


가족의 내밀한 기억을 떠올리지는 않더라도 어머니와 우리 식구들은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평생을 얼마안되는 재력으로 가족들을 통제하려 했다.


가족들은 어머니처럼 지쳐 순응하고, 나처럼 타협하거나, 형처럼 방관하고, 누나처럼 도피해서 그나마 멘탈이 유지되었다.


공부에 취미가 없던 나는 대학이라도 가서 이 집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가졌고, 뭘 공부해야 하냐는 스스로의 질문에 "도대체가 저 아버지는 어떻게 생겨먹은 양반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주는게 심리학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 아버지와 가족을 보면, 그나마 가족의 큰 비극사는 없었던 게 지금보면 다행이다.

아버지는 일생을 자신을 중심으로 가족을 통제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첫째아들, 둘째아들도 둘다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못했다.

자식들은 나름대로 아버지에게 소심한 복수를 한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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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존재인 아버지

다른 형제에게 없는 내게 그나마 "애"가 있는 것은 막내인 나를 데리고 다닌다던가, 내게 당신의 어린 시절, 청년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해주었던거 같다.


부인이 세명인 할아버지와 두번째 부인의 막내로, 공부시켜준다는 말에 양자를 갔지만 아무것도 없는 형편에 스스로 파양까지 하고, 돌아왔으나 어느덧 커져버린 형제들의 냉대에 다시 양자집안으로 돌아가는 등 아버지의 삐뚤어진 마음을 다소나마 이해했던 것 같고, 공감했었다.


한때, 아버지를 동정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하는 행동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나이가 들어서 어머니도 아버지를 어떤선에부터 동정하면서 같이 있어 드린것 같다.


그 무던한 어머니의 속을 태워 심장이 터진 것도 모르면서, 옆에서 아버지는 잘 사신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순간 나는 아버지의 성격을 성격장애로 규정하고 나서야 아버지와 타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족이 아닌 이상 아버지를 동정하고, 타협하기는 어려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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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90을 채워 살아온 인생에서 사랑한 사람이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사람이다.

가족의 피해자이면서, 스스로 가해자가 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까


아버지나 나나 가여운 인생이다. 자기연민은 독이라지만 자기연민이 있어야 타인에 대한 용서도 가능한 법이다.


구순을 맞이한 아버지에게 오래 사세요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자식과 같이 늙어가는 아버지가 된 시대의 비극이다.


아버지와 닮아가는 나를 멈춘것도 아버지이기에 우리 둘사이에는 뫼비우스 띠가 어느샌가 끊어진 듯 하다. 않좋은 것은 어디선가 멈춰야 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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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 누구야? 막내야?"


- 90까지 사느라 고생했어요. 고마워요


" 뭐라고?


- 별거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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