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했던 보스턴과 내가 만난 보스턴
내가 보스턴에 대해 가졌던 최초의 이미지는 아마도 미국 드라마 보스턴 리갈에 나오는 보스턴이었다. 보스턴을 배경으로 한 로펌을 배경으로 한 블랙 코메디물(법정 드라마지만 내가 느끼기엔 블랙 코메디물이다)인 이 드라마를 나는 꽤나 좋아했었다. 정작 드라마에는 보스턴은 거의 나오지 않고, 로펌의 내부와 법정이 거의 대부분이어서, 이 드라마를 통해 보스턴이 어떤 곳인지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드라마상의 보스턴은 대형 로펌이 있는 건물이라 고층 빌딩의 창문 너머로 종종 보스턴 도심이 보이는데, 정작 보스턴에 살 때는 이런 고층 건물이 있는 도심지에 갈 일이 많지 않았고, 도심지를 제외한 보스턴은 대부분의 건물이 낮아서, 내가 드라마를 통해 상상했던 번화하고 복잡한 도시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장면 중 하나는 Boylston 500이라는 주소가 새겨진 고층 빌딩의 정문으로 드라마상 해당 로펌이 있는 건물인데, 이 건물은 실제 보스턴 시내에 있는 건물이다.
정작 보스턴에 일 년이나 살았고, 보일스턴 스트리트도 한 달에 한두 번은 방문했을 만큼 자주 갔음에도 보스턴에 살던 시절에는 드라마 시작할 때 항상 비춰주는 그 건물을 가볼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귀국해서 보스턴 리갈을 보며, 아 맞다 여기 가볼 걸 하고 새삼스레 깨달음이 왔던 것이다.
왜 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1년은 길면서도 짧은 기간이라 4계절을 모두 겪은 그 기간 동안 언젠가 가겠지 하고 생각만 하다가 못 간 곳이 제법 있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건물이 보스턴 트리니티 교회이다.
내가 처음 보스턴을 만난 장소는 코플리 스퀘어였는데, 코플리 스퀘어에 있으면 전통적인 보스턴 트리니티 교회와 바로 그 옆의 헨콕 타워는 오래된 건물과 현대적인 건물의 대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결국 보스턴에 간 첫날부터 언제 가봐야지 하고 못 간 셈이다. 내일로 미뤄두면 가지 못하는 법이니 생각나면 바로 행동에 옮겨야 한다. 헨콕 타워에는 전망대가 있어서, 보스턴 시내를 한눈에 전망할 수 있다고 한다. 역시 가보지 못했다. 내가 보스턴으로 여행 온 여행자였다면 두 곳 모두 가봤을 텐데, 여행자와 거주자의 마음은 다른 구석이 있어서, 일시적인 거주라는 점 잊고 언젠가 기회가 있겠거니 생각했던 것이 결국 가보지 못한 결말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