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여지지 않은 책 : 어린 시절
주말에도 일하던 시절, 철야 근무를 마치고 일요일 아침 집으로 돌아온 아빠의 손에는 빵 몇 봉지가 들려 있었다. 밤샘 간식으로 회사에서 나눠준 보름달빵과 페스츄리, 단팥빵 등이었다. 그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팥빵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자매들보다 일찍 일어나야 했다. 빵 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리면 부은 눈을 비비며 일어나 눈곱도 떼지 않은 채 단팥빵을 먹었다.
적당한 앙금 당도와 쫄깃한 밀가루 반죽, 우유까지 한 모금 하면 완벽한 조합이었다. 하나를 다 먹고 싶었지만 아직 자고 있는 자매들 생각에 소심하게 반쪽을 남겨두었다. 아빠가 딸들 생각에 빵을 아껴 가져온 것처럼. IMF이긴 했지만 빵 하나 못 사 먹을 형편은 아니었는데 그 시절엔 왜 그렇게 서로가 애틋했는지 모를 일이다.
이제 아빠는 더 이상 주말 근무도, 철야 근무도 하지 않는다. 몇 달 전에는 정년퇴직도 했다. 당연히 일요일 아침의 단팥빵은 없어졌다. 언제가 마지막인지 기억도 안 날 만큼 꽤 오래된 일이다. 우리 자매들도 각자 먹고 싶은 만큼 빵을 사 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심지어 언니는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었고 막내는 대학을 졸업했다.
세월은 흘렀지만 우리 가족은 여전히 빵을 나눠 먹는다. 서로 좋아하는 빵이 달라 맛별로 여러 종류를 산 다음, 모든 빵을 사람 수만큼 나눈다. 앙금이 든 빵은 누구 하나에게 앙금이 쏠리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인다. 그렇게 모두가 모든 빵을 맛본다. 어린 시절처럼 서로가 애틋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습관이다.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습관.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데, 그 세월을 이겨낸 습관이 우리 가족에게 있다.
*서울국제도서전에 특이하게 ‘배달의민족’이 참여했다. 책과 배달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우아한 형제들은 어떻게 그 스토리를 풀어낼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다리를 다쳐 이동이 불편해 서울국제도서전에 갈 수 없었다. 아쉬웠던 찰나, 배민 메일링 서비스 ‘주간 배짱이’에서 도서전에 참여하지 못한 구독자를 대상으로 “쓰여지지 않은 책의 작가 되기”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 글은 해당 이벤트에 [어린 시절]을 주제로 응모한 글에 살을 덧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