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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Feb 13. 2024

클라이밍에 잠식된 삶이 행복한 이유

슬스레터 #20


존버하던 문제를 풀 때 실패할 줄 알고 안 찍으면 꼭 성공하고

풀 수 있다면서 의기양양하게 붙었는데 스타트부터 헤매고

사람 많은 암장에서 매트 위에 발 한 짝 올려두고 좌우로 눈치를 살핀 적 있나요?


클라이머라면 한 번쯤 경험해 봤을 순간들인데요. 공감의 순간들을 모아 만화로 그리는 사람이 있어 슬스팀이 직접 만나고 왔어요.



작가 캐리커처 ⓒ나이런거좋아하네


만화에서만 뵙다가 실제로 뵈니 더 반가워요, 작가님!


안녕하세요. 인스타그램에서 <클라이밍 일지>를 연재하는 '나이런거좋아하네' 작가입니다. 저도 항상 만화로만 인사드리다가 처음으로 인터뷰를 통해 독자분들을 만나게 되어 감회가 새롭네요.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고, 조금 떨려요.



작가님의 만화를 기다리는 8천 명의 팔로워가 이 인터뷰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저도 떨리는데요. 혹시라도 아직! 작가님의 작품을 접하지 못한 분들께 <클라이밍 일지>를 소개해 주세요.


<클라이밍 일지>는 클라이밍을 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짧게 각색한 인스타 툰이에요. 처음에는 개인적인 경험들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독자분들의 사연을 받아 그리기도 해요. 아마 클라이머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공감을 통해 재미를 느낄 수 있게 그리려고 노력하거든요. 또, 처음 클라이밍을 접하거나 아예 모르는 분들도 만화를 보면서 '아~ 이런 스포츠구나' 하고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리기도 해요.



ⓒ나이런거좋아하네


웹툰 그리려다가 벽 타게 됐어요


클라이밍을 주제로 한 만화는 어떻게 그리게 되셨나요?


이걸 꼭 그려야겠다고 거창한 다짐으로 시작한 건 아니에요. 웹툰을 그리고 싶어서 교육받으려고 서울로 상경했는데 우연히 클라이밍을 접하게 됐어요. 당시에는 지방에 암장이 많지 않았을 때라 '한 번 해볼까?' 하는 호기심이 컸죠. 호기심이 재미가 되고, 재미가 취미로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클라이밍 에피소드를 만화로 그렸어요. 하지만 어딘가에 업로드할 마음은 없었어요. 그림을 잘 그려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인스타그램에 공개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아무리 연습해도 당당하게 공개할 만큼 성에 차는 그림이 안 나왔어요. (웃음) 이럴 바에야 차라리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 게 낫겠더라고요. 좋은 반응이든 나쁜 반응이든 일단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업로드했는데 뜻밖에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셨어요. 아마도 제가 처음 연재하기 시작한 2019년 초에는 클라이밍 툰이 없어서 더 좋아해 주신 것 같아요.



오, 당시에는 어떤 반응들이 있었나요?


초기에는 공감이 많이 된다, 재미있다는 댓글이나 후기가 대부분이었어요. 최근에는 클라이밍 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덕분에 클라이밍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피드백을 주셔서 더욱 뿌듯해요. 물론 모든 만화가가 그렇듯, 재미있다는 후기가 가장 짜릿하긴 하죠.



이렇게 재미있다는 사람이 많은데 공개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가끔 암장에서 클라이밍을 하고 있으면 더 생생한 후기를 들을 때도 있어요. (웃음) 제가 얼굴을 공개하지 않아서 독자분들은 저를 모르니까 "요즘 이 인스타 툰 재밌더라"면서 친구들과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잠깐 쉬면서 제 만화를 보는 분들도 있고요.



정말 뿌듯하실 것 같은데요. 그런 경험이 많으신가요?


많지는 않아요. 정말 가끔.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듯해요. 한편으로는 걱정도 돼요. "뭐야 오늘 편은 별로네" 하실 수도 있잖아요? 다행히 아직은 다들 사랑해 주시지만요.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더 열심히 그려야겠죠!



ⓒ나이런거좋아하네


그림의 에너지원이 된 클라이밍


하지만 항상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는 어렵잖아요. 그럴 땐 어떻게 하시나요?


정말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DM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무척 많아서 다 읽기도 힘들 정도인데, 틈틈이 읽으면서 괜찮은 사연을 구체화해요. 저 혼자만의 에피소드로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요.


때로는 한 주 정도 쉬기도 해요. 굳이 아이디어를 쥐어짜 내기보다는 다른 그림을 그리거나 운동을 하면서 환기하죠. 순수하게 즐기는 목적으로 클라이밍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이 창작할 에너지가 생기더라고요.



독자분들이 보내주는 사연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나요?


우선 읽었을 때 재미있어서 딱 꽂히는 사연을 먼저 그리게 돼요. 그런 에피소드는 읽어보면서 바로 그림이 그려져요. 머릿속으로 그림이 안 그려지는 경우는 제가 재미있게 살리기 어려운 사연이라 작품으로 소개하지 못해 죄송할 뿐이에요.


아, 가끔 암장 매너에 어긋나는 행동을 사연으로 보내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런 에피소드는 아무리 재미있어도 소개하지 않아요. 실제로 재미있지도 않고요. (단호) 많은 클라이머가 제 만화를 사랑해 주시는 만큼, 올바른 클라이밍 문화를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거든요.



ⓒ나이런거좋아하네


사랑받는 만큼 부담도 크고 때때로 힘들기도 할 것 같아요.


한 편 한 편 업로드할 때마다 독자분들의 평가를 받는 셈이니까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지금까지 악플은 없었지만, 올릴 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은, 어쩌면 돈일 수도 있겠네요. (웃음) 인스타 툰은 수익이 없거든요. 가끔 외주가 들어오지만 고정 수입이 없다는 점이 아쉽기도 해요. 물론 이름처럼 '이런 거 좋아해서' 그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만요.



오직 열정과 애정만으로 어떤 일을 꾸준히 하기란 어려울 텐데, 계속해서 클라이밍 툰을 그리게 하는 작가님의 원동력은 뭘까요?


일단 클라이밍 자체가 인생 스포츠라서 클라이밍에 대한 애정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듯해요. 클라이밍을 하면서 여자친구도 만나고 같이 운동하면서 여러 에피소드도 생기고, 그 에피소드로 만화를 그리기도 하고요. 같이 운동하는 크루에서 사연을 제보해 주면서 응원도 많이 해주고요.


또 그림에 대한 열정은 이모티콘 수익으로 보상받고 있어요. (웃음) 이모티콘 작업도 스트레스가 없지는 않지만 클라이밍 툰 만큼이나 좋아하는 일이에요. 많이 사랑해 주세요!




이모티콘 분야에서는 클라이밍 외 다른 주제도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나이런거좋아하네


이제는 인생이 되어버린 클라이밍


잠깐! 클라이밍 하면서 여자친구는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지금 활동 중인 크루에서 만났어요. 여자친구는 크루 창단 멤버였고, 저는 웹툰을 같이 배우던 동료로부터 크루를 소개받았어요. 정말 예뻐서 처음 보자마자 반했어요. 제가 적극적으로 들이댔죠.



(사실은 처음부터 인터뷰에 함께였던) 여자친구분께도 묻고 싶은데요. 작가님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셨나요?


"크루원이 들어오면 환영회를 하는데 그날 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어요. 환영회 때 찍은 단체 사진이 톡방에 올라왔는데 너무 제 스타일인 거예요. 사실은 제가 먼저 좋아했던 셈이죠! (웃음)"



될 사람은 이렇게도 인연이 되는군요! 2024년에도 알콩달콩 사랑하시길 바라면서, 작가님의 새해 목표를 묻고 싶어요.


클라이밍 툰 작가로서는 선한 영향력을 끼쳐서 클라이밍 문화를 건강하게 만들어가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독자분들이 종종 비매너적인 클라이머를 목격하고 제보해 주시는데, 요즘 부쩍 그런 사연이 많아진 느낌이에요. 새해에는 제 인스타 툰을 통해서 올바른 클라이밍 매너가 확산됐으면 좋겠어요.


클라이머로서는 다치지 않는 것이 목표예요. 예전에는 높은 그레이드를 정복하는 클라이머가 되고 싶었는데 5년 차가 되니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손가락 부상이 제일 힘들었는데, 잘해야 한다는 압박과 욕심을 내려놓으니까 안 다치게 되더라고요. 여러분도 새해에는 안클 하시기를 바라요!



ⓒ나이런거좋아하네


슬스레터 공식 질문인데요, 작가님에게 클라이밍이란 무엇인가요?


음,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삶' 그 자체인 것 같아요. 서울에 처음 와서 친구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막막했는데 클라이밍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됐어요. 여행을 가더라도 암장이 있는 곳으로 일명 원정을 가게 되었죠. 자연 바위를 경험하러 떠나기도 하고요. 삶의 루틴이나 일상이 클라이밍에 맞춰지고 있는 느낌이에요.



마지막으로 <클라이밍 일지>를 구독해 주시는 팔로워분들께도 한 마디 해주세요.


먼저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보내주시는 모든 사연을 그려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죄송하고요. DM으로 사연을 보내주시는 경우에는 조금 확인이 늦을 때가 많은데요. 제가 일부러 안 읽는 게 아니라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어요. DM을 확인하면 영상 저장 기간이 한정되어 다운받기가 어렵거든요. 조금 늦더라도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으니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사연 많이 보내주시고, <클라이밍 일지>도 쭈욱 사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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