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일이? 나에게?
커리어의 확장을 목표로,
정체되어 있는 상태를 움직임으로 바꾸고자,
호기롭게 꿈을 꾸고,
자진해서 추진하고,
어렵게 난관을 극복하며, 부서 이동을 했더랬다.
그렇게 8개월 차가 될 동안,
부서에 적응하며, 업무를 익히고,
중요한 프로젝트 2건을 동시에 맡아,
핑퐁 보고를 쳐내며,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나이가 많고, 경력은 짧다는 이유로,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 커리어의 계획은 안중에도 없이,
발령이 났다.
업무의 본질에 집중하여 효율성을 재고하고,
현장 역량 강화를 통해 미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공정한 인사제도를 통해 조직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명목이었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직무는 고려되지 않았고,
여느 때와 같이 금요일 늦은 오후 공지,
월요일 부로 발령이 났다.
발령 이후 별도의 공지는 없었으나,
짐작으로는 월요일엔 발령받은 부서로 출근을 해야 하나 보다.
'꿈을 꾸기보다, 생존을 해야 할 때인 것 같아.'
남편의 말에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 띵했다.
26, 36도 아닌 46이라는 숫자가 그제야 확 와닿았다.
잊고 살다시피 한 숫자 46.
누가 몇 살이세요 물으면, 계산을 해봐야 했을 정도로 둔감했었다.
자진해서 부서를 옮기지 않았다면, 발령대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기존 부서 업무로서는 꽉 찬 10년의 경력이 있었고, 나이가 가장 많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던 일이나 열심히 잘할 것이지? 왜 나데서 이런 일을 겪냐?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 것이 사실이다.
발령 소식을 전하는 부문장님의,
'제일 안타까운 사람이에요. 우리 합도 잘 맞고 너무 즐겁게 잘하고 있었는데... 정말 운이 안 좋은 경우라서 안타까워요.' 정말 기회가 되면 어떻게든 다시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말은 그저 희망고문일 뿐이었다.
커리어에 있어서 두 번째 위기를 맞았다.
첫 번째 위기는 이전 직장이 어려워지면서 권고사직을 당했을 때 겪었다. 10년 전이었다.
그때도 순진했지만, 운이 좋게도 첫 직장에서 잠시 꿈꿨던 호텔 소속의 FF&E 디자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덕에 호텔 가구 전문가로 불릴 수 있게 되었었는데...
그 일을 더 갈고닦았어야 하는 것이었나?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았다.
하지만 답은 '후회하지 않는다.'이다.
순진했지만, 스스로 변화를 시도했던 것에 후회하지 않고,
호텔 브랜드 개발일을 찐하게 경험했던 것도 소중했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에게도 상사에게도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으로,
보탬이 되었던 팀원으로 남았다면 되었다.
이제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서 무슨 일을 정확히 하게 될지 모르지만,
겪어내야 하는 시간인 것 같다.
꿈꾸기보다 생존을 위한 시기이다.
나의 이런 상황에 딱 맞는 글 선물을 받았다.
사막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쌓아온 직장 생활 십 년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면 엄살이 심한 걸까? 엔지니어식으로 설명해 볼게. 건물을 올릴 기초를 만들려면 흙 사이에 있는 공기를 빼내서 땅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하거든. 한국에서는 땅을 단단히 다지기 위해 무거운 것으로 두드려. 하지만 이곳 사막에서 모래 사이에 공기를 빼내는 방법은 물을 붓는 거야. 그래야 모래땅이 내려앉으면서 단단해지지. 마치 십 년간 복싱 기술을 연마해서 현란한 스텝을 밟으며 펀치를 날리던 무하마드 알리가 어느 날 발이 빠지는 씨름판에서 경기하게 된 기분이 이럴까?
첫 고비를 극복한 방법은 무한한 ‘궁금증’과 ‘자기 긍정’이 아니었을까 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궁금해했고, 동료에게 신세를 지면서 공부했어. 팀 막내에게 간식을 사주고 밤마다 과외도 받았지. 난 무엇이 되려 하지 않고 생존 자체가 되려 했어. 그러면서 끊임없이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라 잘할 수 있을 거라 주문처럼 되뇌었지. - 사막에서 온 편지 중 -
나에게 왜 이런 일이?라는 물음을 떨치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물음만을 가지고,
호기심과 자기 긍정을 장착하고
이 시기를 찐하게 겪어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