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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Nov 16. 2023

여름에는 덥게, 겨울에는 춥게 일하는 게 마케터

까치발 하고 까치밥 찍기

그제와 어제. 회사 앞 정원에 있는 감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마지막 감 하나, 까치밥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종종 거렸다.


손도 시리고, 발도 시렸지만 더 시린 것은 내 마음.


어찌 이리 햇빛은 내 마음 같지 않은가, 감이 아니라 군고구마가 열린 것 아닌가 싶게 찍혀 나오는 사진들에 그저 마음 시리다.


생각해 보면 블로그를 비롯한 소셜미디어 포스팅은 십수 년간 나의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이다지도 늘지 않는 사진 실력이 놀라울 정도.


서명한 근로계약서도 다 가져가던, 불법과 위법이 일상이던 마케팅 대행사 수습사원 시절, 대기업 고객사의 브랜드 블로그를 맡았다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없는 살림에 쌈짓돈을 꺼내어 캐논 똑딱이 디카를 샀었다.


남 좋은 일을 위해 내 주머니를 열었던 20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회사를 위해 내 돈을 쓰던 시기 었다.


당시 내 월급은 100만 원이었고, 부모님의 부채를 갚고 필수 생활비를 제하면 내 손엔 20만 원이 남았으니 전재산을 털어 넣은 셈이었다.


회사의 카메라는 딱 두대밖에 없었고 기계처럼 포스팅을 해대야 하는 인원은 십 수명이었기 때문에 카메라를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즉 지원 부족으로 인해 가난한 신입사원이 자비를 들인 것인데 그에 대한 회사의 그 어떤 보상도, 비용정산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열정과다로 인한 재무상황 판단 이상증이었다만, 그렇게 전재산을 털어 산 디카로 다른 직원들과 카메라 선점 경쟁 없이 여유롭게 사진을 찍어 담당 블로그에 올렸다. 내 것으로 촬영하니 눈치 안 보고 최고의 사진을 만날 때까지 찍을 수 있었다.


그 덕이었는지 내가 운영하던 블로그들은 제법 포털 사이트의 메인에 소개되며 팬들이 생겨났다. 당시 그 블로그의 팬들은 모르겠지.


20대, 서울에 살고 꽤 괜찮은 대학을 다니며 IT에 관심이 많은 얼리어답터이자 여자친구를 위해 아기자기한 소품을 사고 초콜릿을 만들던 블로그 주인이 실상은 그저 가난한 20대 대행사 여직원임을.


훗날 그 악덕기업을 떠나 프리랜서 마케터로 일할 때 고객사들 촬영을 다니며 그 디카를 썼다.


그러다 홀로 떠난 첫 해외여행에서의 기록을 남기는데도 쓰였는데 스마트폰의 등장 후 더 이상 쓸 일이 없어져 중고나라에 팔고자 했으나, 한 시절 나의 업무열정을 더욱 충만하게 해 주며 활약했던 의리는 잊고 그저 한 푼이라도 남겨볼까 하며 비정하게 계산기 두드리는 내 모습에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는지 캐논 똑딱이, 그는 스스로 떠나버렸다.


중고나라에 올린 지 한참이 지나서야 나타난 구매 희망자에게 제품 이상 없음을 확인시켜 주려 테스트해보려 하니 다시는 켜지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따위로 짐짝 취급하며 팔려나가느니 나는 장렬히 여기서 생을 마치겠노라 하는.


빛나던 디카 시절을 품은 그것으로 떠나겠노라 하는.


금지옥엽 그리 아꼈던 핫핑크의 캐논 디카는 그렇게 돌아올 수 없는 강으로, 내 기억 너머로, 똑딱이 디카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더 이상 켜지지 않는 전원을 확인한 순간 미안함과 가난하기 그지없던 신입 마케터 시절, 나름대로 나의 최신 장비 었던 그를 추모하는 슬픔이 몰려왔다.


그를 만나 많은 것들을 기억에 담고,  일에 쓰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렇게 가난뱅이 시절, 자비 들여 카메라를 사며 사진을 찍고 컨텐트를 만들었다는 스토리에 비해 아직 나의 사진 실력은 처참하다.


사진을 찍어야 하는 순간이 올 때면 긴장을 한다. 또 한소리 듣는 것 아닐까 하며.


왜 이렇게 찍었냐는 질문에 나름대로의 논리적 답변을 하지만, 나는 안다.


정말 괜찮은 사진, 정말 괜찮은 글, 정말 괜찮은 그 어떤 것에는 질문이 붙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사진과 글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단연코 글이다.


사진은 글을 보조하는 수단이라며, 진짜배기가 담긴 글을 보아달라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쳐보지만 나 역시 알고 있다.


구구절절한 글과 말들을 관통하는 사진 한 장의 가진 힘을.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는 사진을 못 찍고 달라질 것 없는 냉혹한 사진실력의 현실을 기술하며 핑계들을 우물거린다.


회사 정원의 까치밥을 찍어 올리자는 대표님의 뜻을 받들어 칼바람 속, 까치발 하며 까치밥을 찍었다.


몸을 꺾고, 계단 위에 올라서고, 쥐며느리처럼 웅크리기도 하며 찍은 사진들 중 내가 봐도 처참한 것들을 가려내고 색 보정을 거쳐 최종 간택된 몇 장의 것들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그렇게 하나씩 쌓여가는 인스타그램의 사진들을 보면 어린 자식들의 돌사진 보는 엄마 마음이 되어 수시로 드나들며 눈길로 사진을 쓰다듬는다.


어이구 장해라. 내 새끼들.


사진에서만큼은 나도 고슴도치맘이다.


누가 마케터 멋지다 했는가.


질문이 나오지 않는 컨텐트, 그것을 위해 마케터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곳을 뛰어다녀야 한다.


이 겨울, 꽤나 덜덜 떨며 아이폰을 들고 밖으로 나갈 것이고, 콧물 훌쩍이며 마음에 드는 한컷이 나올 때 잇몸미소를 지으리.


곧 만나자, 내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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