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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Dec 27. 2023

국민분식, 떡볶이에 대한 진솔하고 당돌한 고백

나는 떡볶이가 싫어요!!!!!!!

2020년 서울시가 전국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코로나 시대 ‘나를 위로하는 음식’, '소울푸드'를 조사했더니 1위는 바로 떡볶이었다. 2위는 치느님이라 칭송받는 치킨이며 3위는 곁들이는 토핑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되는 김치찌개.


내가 여기서 공감하지 못하는 소울푸드는 단언컨대 떡볶이다.


치킨도 내게 그 정도의 감동을 주지 못하며, 김치찌개의 경우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김치찌개일 경우에 한해 나를 위로한다.


나의 소울푸드라 하면 애호박을 채 썰어 볶은 후 빨갛게 무쳐 멸치국수 위에 얹은, 어떤 식당에서도 팔지 않는 엄마가 만들어준 전라도식 잔치국수이다. 그 뒤를 거의 비등하게 따라오는 것은 홈메이드 된장찌개와 계란말이다.


그 후로도 더 몇 가지의 음식을 제시할 수 있는데 떡볶이는 나의 소울푸드 영역에 명함도 내밀 수 없다. 나는 떡볶이를 싫어한다.


이럴 때부터 떡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떡국도 좋아하지 않았다.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떡국을 안 먹어도 어차피 학년은 올라가고, 어른들은 늙었다. 새해와 떡국의 그 개연성은 지금도 모르겠다.


떡볶이에 쓰이는 그 미끈한 떡. 치밀하게 응집된 그 딴딴한 쫀득함이 별로다. 내게 떡볶이 속의 떡이란 그저 쌀가루 뭉친 덩어리를 우적거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떡볶이 국물에 순대나 튀김을 찍어 먹는 것이나 떡볶이 국물을 흠뻑 머금은 어묵을 좋아한다.


순대를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을 수 있다는 것은 초등학교 시절, 친구에게 배웠는데 그것은 마치 불의 발견에 비견할 경험이었다. 즉, 내가 떡볶이를 먹는다면 그것은 오롯이 순대와 튀김을 더 맛있게 즐기기 위함이다.


중학생 때 친구와 간 즉석떡볶이집에서 떡 빼고 이것저것 다른 것들만 시키니 주문받던 아주머니는 '떡볶이인데 떡이 있어야지!' 하며 시키지도 않은 떡을 넣어주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 친절이었다. 분명 그 추가된 떡사리 값도 받으셨을 텐데 말이다.


나의 이런 反떡볶이 자세를 더 굳건하게 해 준 것은 정신적 외상에 큰 영향을 주었던 구 보스가 떡볶이를 너무 좋아하고, 혼밥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경험으로 인한 것이 크다.


그때 참으로 점심시간이 괴로웠다.


강남 일대 식당들의 절대적인 공통점인 뭘 먹어도 설탕과다, 하나같이 달달한 그 맛을 싫어해서 그나마 애정하던 점심 메뉴는 제주식 은희네 해장국이었는데 설탕을 붓다 못해 때려 박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달디 단 떡볶이를 왜 이리 좋아라 하는지.


나 빼고 대부분의 팀원들도 떡볶이를 점심 메뉴로 하자고 할 때 환영하는 분위기었어서 대체 떡볶이 안 좋아하는 한국인은 정녕 없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 정도였다.


그때의 나는 '저는 떡볶이 안 좋아해서요. 혼자 먹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얼키설키 뒤엉켜 일하는 사람들 역시도 일종의 식구라는 아주 잘못된,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고 혼자만 빠져 혼밥 하는 것은 문제가 좀 있다는, 이 또한 구닥다리 그 자체로 어서 타파해야 할 구습과도 같은 근본 없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식구는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 아니라 밥을 같이 먹을 때 편한, 무조건적으로 편들어 줄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도 아주 선별적으로 부여할 수 있는 '애칭'이었는데, 잘못 알아도 한참 잘못 알았다.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회사라는 세상 밖으로 튕겨져 나와 재야의 백수가 된 상태었다.


노동의 일상 속 그 작고 소중한 점심시간에 좋아하지 않는 떡볶이를 억지로 먹는 날에는 곁들임으로 시키는 삶은 계란이나 야끼만두 등을 살짝 국물에 적셔 먹거나 떡볶이 국물에 볶은밥을 위주로 먹었는데, 그나마도 너무 달아서 사무실 복귀해서는 블랙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할 자유가 박탈되었던 회사 생활, 나는 소망했다. 먹고 싶은 것을 점심으로 먹는 소박하지만 크나큰 자유를.


하나의 회사를 다니고, 그곳과의 인연을 끝맺을 때마다 나의 식성을 새롭게 한 번씩 깨닫고, 안 먹는 음식 목록을 재정비한다.


사실 학창 시절조차도 친구들이 먹자니까 따라먹었을 뿐, 떡볶이를 맛있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게 떡볶이는 사회화 내지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던 싫은 의무에 불과했다.


먹기 싫은 것은 안 먹어도 되는 삶을 선택해서 생활은 소박해졌지만 입맛과 소소한 삶의 낙은 풍성해졌다.


그래서 앞으로도 떡볶이는 먹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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