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홍 Sep 27. 2024

진급하고 싶지 않아


 

작년 9월, 나는 초급반에서 중급반으로 진급했다. 지금이 벌써 5월 중순이니 중급반에 올라온 지도 8개월이 되었다. 초급반 생활 역시 8개월 끝에 중급반으로 진급했다. 이제 상급반으로 당장 올라가라고 해도 걸릴 게 없는 때이긴 하다. 요새 우리 강사님은 틈만 나면 “(윗반으로) 올라갈까?” 하신다. 중요한 점은 나는 상급반으로 진급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진급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이러하다.

 

 첫째, 용의 꼬리로 사느니 뱀의 머리로 살고 싶다. 상급반에서 꼬리로 도느니, 중급반에서 1~2번 주자로 으쓱으쓱하는 편이 기분이 좋다. 꼬리로 수영하는 것도 편하긴 하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는 8개월 동안 겨우겨우 만든 자리이다. 맨 뒷순서에서부터 한 칸 한 칸 앞으로 넘어와 마침내 내가 상위 3명으로 랭크되었을 때의 기분을 아시는가? 그런데 이렇게 기쁜 나날들을 얼마 못 누린다고 생각하면 속상하다. 이전에 진급하신 분들은 꽤나 오래 중급반 생활을 하신 걸로 기억한다. 나도 한 5개월 정도 더 버티며 중급반 1번 주자의 자리를 꿰차고 싶다.

 

 둘째, 상급반의 운동량을 따라갈 수 없다. 사실 자유수영날 몰래 상급 레인에서 수영을 해본 적이 있다. 다들 나를 보고 “이제 상급반에 올라가도 되겠다”며 칭찬이 자자했던지라 바람이 좀 들어갔다. 마침 초급, 중급 레인에는 사람이 많았다. 어쩌면 지금이 상급 레인에서 수영을 해볼 기회인지도 몰라! 하며 조금 들뜬 마음으로 구분 선을 넘었다. 2바퀴 만에 결론이 났다. 역시 수영 고수님들은 달라. 속도부터가 달라. 나는 거북이가 따로 없었다. 아 아니지, 거북이도 물속에선 나보다 빠를 것이다.

 

 셋째, 단체 수모를 쓰고 싶지 않다. (문장을 쓰는 순간 느꼈다. 사실 오늘 제일 하고 싶던 이야기는 이거였던 것 같아!) 어쩐 일인지 상급반 사람들은 강습날 모두 단체수모를 쓴다. 자유수영날에도 종종 단체 수모를 쓰고 오신 모습을 본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다른 디자인 수모는 구매하지 않으시는 건지, 소속감 때문인 것인지, 혹은 그 둘 다인 건지는 모르겠다. 중급반에선 패셔니스타로 계셨던 분도 상급반 진급을 하니 단체 수모만 쓰고 계신다. 요즘 같은 시대에 “꼭 단체 수모를 쓰세요”라고 강요할 것 같진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단체수모만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격적으로 옆 길로 새어본다. 자자, 급수별로 한번 생각해 보자.

 초급반에선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등록/중도포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소속감 자체가 필요 없고 부담일 것이다. 단체수모? 어이구 이게 웬 말인가? 당연히 필요 없다.

중급반이라고 하면 한참 수태기가 올 시기이다. 수태기 극복 필승전략은 무엇일까? 바로 수영복 수모 코디 놀이이다. 이 재미를 빼앗으면 안 된다. 아, 물론 단벌신사 분들도 계신다. 이 모든 논리는 다 내 뇌피셜이니 너무 진지해지면 안 된다.

 마침내 상급반이다. 드디어 네가 상급반까지 왔구나. 마침내 너를 우리 수영장의 고인 물로 인정한다. 상급반의 징표! 바로바로~단. 체. 수. 모!!! (.....) 이런 것일까?

 

 

 어찌 되었든 나의 중급반 스토리가 되도록 길게 이어지길 바라는 중이다. 게다가 최근엔 우리 반 오리지널 1번 주자님께서 장기결석 중이다. 그래서 요새는 내가 1번 주자로 돌 기회가 종종 생기고 있다. 2~3번 주자도 아닌 1번 주자라니..! 아아, 나를 부디 이 단잠에서 깨지 않게 해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