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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이 May 08. 2018

해외여행과 거주가 비슷할 거라 착각하는 어린 중생에게

ft. 예상치 못했던 장점도 있음

어찌하여 여행과 거주가 같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이 미련한 것아!


'헬조선만 탈출하면 만사가 형통할 거야!'

'여행 다니면서 외국인 친구도 많이 사귀었니 쉽게 현지인 친구들도 사귈 수 있겠지?' 

'나는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봤으니 재외국민 생활도 괜찮을 거야!'

'해외 거주도 여행만큼이나 설레겠지?'


당신은 혹 해외 거주의 로망을 꿈꾸며, 이렇게 군이 가득한 오판을 하고 있지 아니한가? 어린 중생이었던 나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전 세계 여행지에서 만난 수많은 외국인 친구들은 한결같이 좋은 이들이었다. 돌이켜 보면, 여행자로서의 설렘이 기반된 인연이기에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들 대부분은 다방면에서 경험이 깊고 견문이 넓은 이들이었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을 기준으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친구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일하는 평범한 현지인들이다. 이들에게 타임스퀘어(영등포 타임스퀘어 말고 뉴욕 타임스퀘어)와 같은 빌딩 숲 시민의 일상, 아름다운 바다 경관을 간직한 하롱베이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떠들면 당연히 이해를 못하고 난감해 하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하루하루가 설레는 여행객의 입장과 달리 재외국민 입장에서는 각종 커뮤니케이션 때문에 스트레스 안 받고 넘어가면 다행인 나날들이다.

바다가 없는 내륙국 부르키나 파소에서 유난히 그리운 하롱베이의 추억


2018년을 기준으로 재외국민지방선거 투표권이 없다. 주민등록 상, 국내 거주지로 등록이 되어있지만, 당장 외국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게 씁쓸하면서도 억울하기도 하다. 더욱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문제로써, 부르키나 파소는 한국 대사관이 없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한국 대사관은 이웃나라 코트디부아르에 있다. 지난번 와가두구 테러와 같은 일이 반복되더라도 대사관의 즉각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수단 조차 없기에 조금은 더 불안하다고나 할까?  

지난 03월에 있었던 와가두구 테러


여담이지만, 부르키나 파소에서 발견한 가장 큰 장점Youtube RED를 결제하지 않아도 광고 없이 동영상이 바로 재생이 된다는 점이다. Youtube 재생 바 중간중간에 껴있는 노란색 광고 표시도 항상 광고 없이 그냥 넘어간다. 아예 광고 자체가 없는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부르키나 파소에서 아직까지 한 번도 Youtube 광고를 보지 못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 내 소중한 5초를 Youtube에 헌납하지 않아도 되기를 희망한다.     


부르키나 파소에서는 자신들보다 피부가 흰색이면 인종과 상관없이 무조건 흰둥이라 한다. 내 거주지는 흰둥이들이 많이 살고 있기에 일명 흰둥이 아파트로 통하는 곳이다. 우리 아파트에 경비원이 몇 명 있는데, 그중 입주민들이 가끔씩 팁을 주는 호의를 권리로 생각하는 배은망덕한 놈이 있다.


이른 새벽, 폭염에 잠을 설치다 바람도 쐬면서 끼니도 때울 겸 집 근처 구멍가게에서 50 프랑 세파 정도 하는 비스킷을 사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한 그 아파트 경비원이 나에게 '아침을 사 먹고 싶다고 팁을 달라'라고 했다. 얼마가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먹고 싶으니 200 프랑 세파를 달라고 하더라. 개념이 잠시 터키항공을 타고 인천국제공항을 다녀온 것 처럼 황당하여 '나는 지금 50 프랑 세파짜리 비스킷을 사서 먹고 있는데 네 샌드위치 값을 위해 팁으로 200 프랑 세파를 줘야 하냐?'라고 따졌더니,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다른 흰둥이들은 다 팁을 주는데 왜 너만 안주냐고 화를 내더라. 그래서 '내가 무슨 뱅크 오브 아프리카냐?'라고 다시 따졌더니 그때서야 팁 주는 건 강제가 아니라 선택이라며 꼬리를 내리더라. 혹자는 푼돈을 그냥 주고 말지, 왜 그렇게 골치 아프게 사냐고 말하곤 하지만, 그 경비원에게는 앞으로도 영원히 단 1원도 줄 생각이 없다.

현지 뱅크 오브 아프리카의 모습


부르키나 파소 생활이 결코 쉽지 않게 느껴지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면, 흰둥이들을 뱅크 오브 아프리카와 같은 지갑 자체로 착각하는 배은망덕한 이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점과 케첩 깡통을 옆구리에 차고 오매불망 한 푼 만 달라고 몰려드는 현지인 아이들을 모두 도와줄 수 없음이라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100명 중에 한 명이 가난하면 나머지 99명이 도와줄 수 있겠지만, 100명 중에 한 명이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아 보이면 나머지 99명의 표적이 되더라.

부르키나 파소 현지 통화, 한화로 약 2만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10,000 프랑 세파

  

물론 어느 나라에서 거주를 하냐에 따라 차이점은 있겠지만, 어디를 가든지 그 나라만의 특징이 있기 마련이고 재외국민으로서 어려움이 없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을 것 이다. 여건이 더 나은 곳에서 생활을 할지라도 재외국민이라는 이유로, 현지 사회에서 항상 '을'이 되고, 말 같지도 않은 사소한 일로 현지인들과 티격태격할 경우의 수가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생활에 있어 필수적인 모든 것이 심각하게 부족한 인프라와 절대적 빈곤 사회라는 부르키나 파소의 특수성 이외에, 한국과는 다른 방식의 OS를 이해해야 하는 것 또한 적응이 될 때까지 인내심이 필요한 난제이다. 예를 들면, 자신들이 수도세를 누락시켜놓고 얼마 후에 느닷없이 벌금 고지서가 날아오고, 슈퍼마켓에서 잔돈이 없으니 나중에 받아가라고 해놓고선 시치미 뚝 때는 일처럼 기분 상하는 것처럼 말이다.  

잠시 지평선 한걸음 뒤로 물러나는 와가두구의 뜨거운 태양


진심 답이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가장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모든 사고방식을 현지식으로 OS를 다시 셋업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날씨,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등등 모든 것을 새로운 환경에 다시 최적화시켜야 하는 과정이 결코 순탄한 길은 아니다. 때론 말라리아에 노출될 수도, 예상치 못했던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방법은 오직 자신만의 경험에서 터득한 지혜를 그때그때마다 발휘하는 방법뿐이라고나 할까?

유학이 됐든지, 뭐가 됐든지... 해외 거주를 할 일이 있으면 자만하지 말고 한번 더 신중하고 철저하게 준비하고 대비하시길 바라며... 오늘도 재외국민 여러분 파이팅입니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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