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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성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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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이 May 09. 2018

고장에 대한 또 다른 애증 표현, 유니폼

 

누군가에겐 단순한 패션 아이템이지만, 꼭 모두에게 그런 건 아니다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별들의 무대. 챔피언스리그. 물론 부르키나 파소가 축구 강국은 아니지만 많은 축구팬들이 챔피언스리그에 열광했다. 그렇기 때문일까? 널리 알려진 유럽리그의 축구 유니폼을 입고 일상생활을 하는 현지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들에게는 유명 스포츠팀 유니폼이 단순한 패션 아이템 혹은 미디어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다른세상에 대한 동경의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외국인들은 매치데이가 되면 레스토랑에 자신의 출신 고장 유니폼을 입고 와 꼭 축구 중계를 사수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평소처럼 유럽리그 축구를 즐기고 있는 현지인들과 외국인들  


두발로 직접 방문한 세계 중 가장 축구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곳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바르셀로나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과 더불어 바르셀로나의 또 다른 문화재로 지정되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축구팀, FC바르셀로나. 명성만큼이나 찬란한 역사와 전시장을 가득 채운 우승컵을 보고 있노라면 왜 전 세계가 FC바르셀로나에 열광하는지, 그리고 FC바르셀로나가 왜 시민들의 자존심인지를 느낄 수 있다.

캄푸누에 전시되어 있는 각종 우승컵들


 매치 티켓 한 장에 수십만 원을 웃도는 일이 흔하지만 그나마도 거의 모든 경기가 순식간에 매진될 정도라고 하니, 승패에 상관없이 지역사회가 FC바르셀로나를 열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FC 바르셀로나의 영원한 10번 MESSI선수 유니폼, 캄푸누에서...


정장 차림에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파리지앵들, 내가 기억하는 한겨울의 프랑스 파리는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굳이 파리 생재르망 유니폼을 입고 있던 이는 지하철 안에서 스피커로 프랑스 유명 래퍼 Niska의 PSG를 크게 틀며 승객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불량청년뿐이었다. 사실 파리 생재르망 유니폼은 평범한 파리의 길거리보다 프랑스 힙합 뮤지션의 뮤직비디오에서 더 흔하게 발견되는 듯 보인다. 100% 주관적인 견해로는 파리에서의 파리 생제르망 유니폼은 젊음과 저항의 상징이자 프랑스 힙합의 상징과 같은 느낌이다. 파리 생재르망 유니폼을 입고 파리를 활보하는 어르신들은 드물었지만 올림피크 마르세유 유니폼을 입고 파리를 활보하는 어르신들은 종종 볼 수 있었다. ‘파리 유니폼을 입고 마르세유를 활보한다면 진정 용기 있는 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파리 시내에서 마르세유 유니폼을 입고 다닌다는 것, 마르세유 시내에서 파리 유니폼을 입고 다닌다는 자체가 지역 도발에 가까운 행위라고 하니... 혹시라도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프랑스에서 저런 행동은 피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1월의 파리


“잔돈 드릴게요. 그리고 성당 안에서는 침묵을 지켜주세요. 절대 시끄럽게 하지 마시길 부탁드려요. 다른 정보는 다 팜플랫에 적혀있어요. 그런데 무엇보다 당신의 그 빨간 캐네디언스 져지는 완벽 그 자체네요!”

도깨비가 다녀간 퀘백시티, 그곳의 한 기념품 가게


속사포처럼 프랑글레를 쏘아대던 몬트리올 노트르담 대성당 매표소 여직원이 내가 입고 있던 캐네디언스 져지를 가리키며 푸근한 언니 미소를 지었던 찰나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스하키의 고향이라 불리는 곳. 몬트리올. 북미 아이스하키리그를 칭하는 NHL의 그토록 오래된 역사를 함께 한 만큼 역사와 전통이 깃든 몬트리올 캐네디언스의 연고지이다. 과거에는 장 빌리보와 같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영웅이 많았던 팀으로도 유명하다.

그토록 화려했던 과거와 달리 93년 이후, 단 한번도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한 몬트리올 캐네디언스


물론 요즘 캐네디언스의 기량은 예전 선수들만큼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퀘벡 사람들이 캐네디언스의 부활을 꿈꾸며 꾸준한 사랑을 주고 있다. 호스텔 직원도, 공사판의 노동자도, 퀘벡시티의 어린아이들도, 캐네디언스 져지를 입고 있는 서로에게 눈빛만 마주쳐도 엄지를 척하고 들어주던 추억이 생생하다.

몬트리올캐네디언스 져지를 장식품으로 걸어놓은 퀘백시티의 한 레스토랑


‘이봐요 젊은이, 저 아름다운 시카고의 풍경 좀 봐요, 얼마나 아름다워요? 나는 왜 사람들이 뉴욕만 찾는지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이른 아침, 뜬금없이 초면인 나에게 고장 부심을 한껏 뽐내던 한 노년.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한 사람이 이상했던 게  아니라 시카고 사람들은 원래 고장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다고 하더라.

아름다운 모습으로 추억되는 이른 아침의 시카고


결코 뉴욕에 밀리지 않는 도시의 경관 등도 한몫하겠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NBA 리그 시카고 불스 또한 자부심의 원천으로 한몫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 명성이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곳의 모두가 전설의 23번, 마이클 조던이 코트를 누비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일까? 시카고에서는 편의점에서도 불스 캡을 판매하고 있다.

시카고의 한 매장에서 볼 수 있었던 조던화, 가격은 얼마나 할까?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MLB 모자를 패션 아이템으로 애용하지만, 내가 방문했던 미국의 대도시들은 갓 걸음마를 땐 어린아이부터 지팡이에 의지하던 노년까지 거의 모든 이들이 MLB 모자를 애용했다.

불스의 컬러인 레드로 표현한 환상적인 디자인의 불스캡


북미에서 스포츠팀 모자, 유니폼 등은 고장에 대한 애증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나 할까? 뉴욕시티 또한 여느 미국의 대도시들처럼 MLB 유니폼부심이 깃들어 있는 듯 보였다.

양키스 스타디움의 한 매장에서...


여담이지만, 진짜 야구를 사랑하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보스턴에서 각별하게 느껴졌다.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팬웨이 파크를 가득 매운 관중들이 경기 중 Neil  diamond의 Sweet caroline을 합창하던 그 감동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확실히 야구를 사랑한다. 야구 자체를 사랑하는 건 곧 그들의 고장인 보스턴을 사랑하는 또 다른 애증 표현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팬웨이파크에서 직관 한 레드삭스 경기


경의선 라인에는 야구 연고지역이 없어서일까? 서울에서 프로야구 경기가 있는 날, 가끔씩 야구유니폼을 입고 경의선을 타면 힐끔힐끔 쳐다보시던 어르신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안타깝지만 오늘날 까지, 지하철에서 한국 프로야구 유니폼을 입고 다니면 어리둥절해하는 시선들. 우리는 언제 그러한 부담스러운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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