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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이 May 02. 2019

존중의 사각지대

그렇게 서로 각자가 침전의 방에 갇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다.

과연 너란 사람은 그렇게 무시받아도 되는 존재일까?


남들도 나와 똑같이 반짝 관심을 가질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을까? 이슈가 될 때만 잠깐씩 관심을 갖는 척하다가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나 몰라라 하는 고질적인 사회 분위기가 한탄스럽지만 그냥 또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려보낸다.


 이제는 네 존재 자체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바람이 너무 사치스러운 욕심이 되어버렸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든다. 예전에는 '네 출신 성분과 족보는 그렇게 무시당해도 괜찮은 위치'라는 식의 뉘앙스가 억울하고 화가 났는데, 이제는 그것조차 무덤덤하게 여기며  너무 무뎌진 것은 아닌지 돌이켜 생각을 해본다.

| 출처 Pixabay.com


캐나다처럼, '너란 존재 자체만큼은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존중과 상식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로를 향한 존중에 점차 무감각해지고 있는... 아니 어쩌면 모두가 존중받는 것 자체에 워낙 낯설고 어색하기 때문에, 타자를 존중하는 방법 자체를 모르는 것 같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양보 따위는 20세기의 추억팔이일 뿐, 지금은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 자기 밥그릇 지키기만 바빠 보인다. 어떻게 해서든지 너를 밟고 일어서야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패러다임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팩트처럼 느껴진다.


| 출처 Pixabay.com


소위 말하는 족보와 출신성분을 그토록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회였지만, 지금은 서울대 출신이든지 지잡대 출신이든지, 금수저든지 흙수저든지, 우리 세대는 이미 바닥을 친 자존감 때문에 다시 세상에 문을 두드리는 시도조차 두렵고 떨리며 버겁게 느껴진다. 영화 '겟 아웃'의 크리스처럼 그렇게 각자가 침전의 방에 갇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다. 모든 것이 끊임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모두의 재능과 역할이 공평하게 존중받고 주목받아야 마땅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의 마음가짐은 그러하지 못한 듯하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존중의 사각지대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학과나 커뮤니케이션학과 출신이 아닌 그래픽 디자인학과 출신인 내가 봐도 참 딱한 현실이다. 미래의 후배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자산이 지금의 사회구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패러다임이라면, 무능했던 우리를 얼마나 원망할지, 나는 그것이 가장 미안하고 두렵다.


|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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