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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이 May 05. 2018

내일은 과연 전기를 쓸 수 있을까?

부르키나 파소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테러가 아닌 전기세 납부 고지서

부르키나 파소에서 제일 무서운 건 테러가 아니다


지속되는 5월의 폭염. 와가두구는 거대한 황토방 찜질방이라 표현하고 싶다. 무더위 자체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것은 출근과 함께 끊기는 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전 11시 ~ 오후 12시 30분 정도의 시간은 전기가 잠시 끊기는 시간이 아닌 전기가 들어오는 찰나의 순간이다. 이어지는 폭염에 하필 사무실 발전기까지 고장나 업무를 위해선 기약없는 전기공급을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던 2월에는 하루에 1시간 ~ 2시간 정도만 전기가 끊기더니 얼마 전까지는 하루에 1시간 ~ 2시간을 빼곤 계속 정전이었고 이제는 아예 해가 떠있는 시간은 전기를 못쓴다고 생각하는게 마음 편하다.

말보다 총이 우선이었던 워싱턴 D.C 경찰, 고개만 살짝 돌려도 기술적으로 호주머니를 터는 라틴계 소매치기,
덩치 그 자체가 위협이었던 모스크바의 부랑자들,
 온건한 마음의 순례길을 위협하던 스페인의 야생 늑대 발자국까지...

세상에는 무서운 존재들이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다르게 부르키나 파소에서 제일 무서운 건 테러가 아니다. 사실 부르키나 파소는 ‘정직한 사람들의 나라’라는 국호답게 현지인 대부분이 친절하고 상냥하다. 한국에서 서아프리카 출신 친구들에게 ‘부르키나 파소가 더워서 그렇지 사람들은 전부 좋다’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부르키나 파소에서 제일 무서운 건 무엇일까? 물론 말라리아나 뎅기열, 황열병 같은 질병들도 있겠지만, 가장 무서운 존재로 손꼽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소나벨 고지서가 아닐까 싶다. 사람 그 자체보다 살인적인 물가가 훨씬 위협적이지만, 그중 최악은 소나벨이라는 사실에 현지인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동의할 것이다. 



부르키나파소의 전기 고지서(Facture SONABEL)


소나벨은 Société nationale d'électricité du Burkina Faso의 약자로 부르키나 파소 전력공사 정도로 말할 수 있다. 물론 소나벨을 이야기하기 전, 부르키나 파소의 전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르키나 파소에서 전기는 어떤 의미일까? 우선 부르키나 파소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자원과 인프라가 거의 없는 게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석탄, 석유와 같은 자원들이 없을뿐더러, 사헬지대 내륙에 위치해 있어 조력발전이나 풍력발전을 기대하기도 힘들고 한국과 같은 원자력 발전소는 더더욱 실현 가능성이 없다. 최근에서야 유럽의 도움을 받아 태양열 발전소를 만든 수준이지만 전체 전력소비량에  비하면 아직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와가두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마뱀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아직까지 많은 양의 전력을 코트디부아르와 같은 이웃나라에 의존하고 있다. 현지 일간지의 한 기사에 따르면  부르키나 파소는 전체 전력의 약 40% 이상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전기값 자체가 워낙 비싸 보니 공장에서 똑같은 상품을  만들더라도 수입품보다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수입상품보다 내수상품아 훨씬 비싸다 보니 현지인들이 수입상품을 더 선호하게 되고  이는 내수경제 침체와 더불어 부르키나 파소의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라고 한다. 와가두구, 보보 디올라소와 같은 대도시를 제외한 타 지역은 사실상 전기 공급 자체가 극히 제한적이라고 하니 이와 관련된 내수경제 악화가 국가적 총난국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현지에서는 일반 가정집에서 에어컨을 켠다는 것이 곧 상류층의 삶을 살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까운 관계에 있는 한  현지인 친구는 와가두구에 살고 있지만 모든 빛을 햇빛에 의존한다고 한다. 해가 지고 밤이 되면 달빛에 의존하거나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자주 찾는  PuB 야경, 현지물가에 비해 비싼편이지만 외국인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부르키나 파소의 전기는 한국보다 훨씬 비싸다. 가령, 한 가정집에서 냉장고를 작동시키고 TV를  보며, 더울 때마다 수시로 에어컨을 켠다면 전기값이 약 40만 원 이상 고지될 것이다. 한국 기준으로도 부담스러운 가격이 아닐 수 없지만 와가두구 현지인들  평균 월급에 약 3 ~ 4배 이상되는 가격이니, 전기를 쓸 수 있어도 그 자체를 포기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비싼 전기값이 제값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고 없이 전기가 끊어질 때는 막막함 그 자체인데 이런 경우가 점점 더 잦아지고 있다. 주간 평균 기온 40도. 본격적인 혹서기가 시작된 3월 ~ 4월 부터 폭염의 절정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까지... 더욱 잦아지고 심해지는 단전. 회사도, 외국인 레스토랑도, 이미 노후한 발전기가 고장나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내일은 과연 전기를 쓸 수 있을까?

평균 40도를 웃도는 3월의 와가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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