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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u Poloi Dec 03. 2018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세계여행 준비


우리는 독일에 함께 살고 있던 한국인-독일인 커플이다. 스페인에서의 첫 만남부터 함께 이미 많은 곳을 여행했다.


 2018년. 가을이 서서히 끝나갈 무렵 우리는 길고 긴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 목표는 최대한 길게, 경비는 적게, 많이 걷고 되도록 히치하이킹을 이용하기. 비행기를 타지 않으며, 숙박비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지출하지 않고 현지인과 부딪히는 여행을 하자. 혹은 가끔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만 가지고 문명을 벗어난 생활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인터넷도 물도 전기도 없는 곳에서 서로만 의지한 채 말이다. 어딘가 적당한 장소를 찾는다면 일주일쯤 문명 밖으로도 벗어나 볼 것.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데는 그렇게 큰 계기가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모험 책을 즐겼고, 우리 시절 누구나 옆에 끼고 읽었던 한비*선생님 책을 참 좋아했다. 자연스레 나도 어른이 되면 세계를 누벼야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의 파트너도 마찬가지다. 그도 언젠가는 자신이 세계여행을 떠날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정말 말도 안되게 쿵작이 잘 맞는 서로를 만났고, 함께 세계여행을 떠나는 것이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 믿고 있다. 비록 아직 무모하고, 이룬 건 하나 없지만, 우리는 길에서 담대하게 도전해 나가고 싶다. 나 같은 경우는 지금까지도 남들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궁극의 자유를 찾아 떠나보고 싶다. 훨훨 날다 보면 언젠가 집이 그립지 않을까.


 시작점에 대해 우리는 몇 달을 고민했다. 우리가 살고 있던 유럽에서부터 서서히 아시아 쪽으로 넘어갈 것인지, 한국에서부터 시작을 할 것인지. 결론은 우리가 시작하는 11월은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 기에, 추위를 먼저 피해 가고 싶었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줄 곳 가고 싶어 했던 인도네시아에서 시작을 하기로 결정했다. 쉬운 시작점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도네시아는 섬나라이기 때문이다. 알아본 결과, 비행기 없이 인도네시아에서 말레이시아 본토로 건너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인도네시아 북쪽 수마트라섬에서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로 건너가기로 했다.


 이렇게 시작점을 정하고 나니 조금씩 우리의 여행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필요한 물품을 구입해야 했다. 텐트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텐트는 우리가 알아 본 시중의 텐트 중 가장 경량인 텐트로 정했다. 아마도 배낭을 메고 수천 킬로가 넘게 걸어 다닐 테니, 무게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비와 바람에 더 강한 타사 텐트와 고민하느라 텐트를 정하는 데만 꼬박 한 달이 걸렸다. 그리고 검색에 검색을 통해 알아낸 만능 쿠커(가볍고, 전용 보틀에 가솔린과 비슷한 발화 가능한 액체를 넣어주면 불을 피울 수 있다) 개인용 필요 물품 등, 필요한 것들을 하나 둘 준비해 나갔다. 우리는 그때는 둘 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틈틈이 준비해야 했다. 최종적으로 준비를 마쳤을 때 나의 가방은 14kg, 남자친구의 가방은 18kg 이 되었다. 이제 이 두 가방에 집을 포함한 우리의 온갖 세간살이가 다 들어있는 셈이다.


 독일을 떠나기 전에는 몇 주에 걸쳐 기본적인 접종과 장티푸스, 간염, 황열병 같은 열대지방에서 쉽게 걸릴 수 있는 질병에 대비한 예방접종을 맞았다. 역시 보험의 나라답게, 모든 예방접종은 기본적으로 임금을 받기 위해 들어있던 보험에서 커버 가능했다.

비자나 보험과 관련된 서류 준비 또한 철저히 하고 싶었다. 사실 요즘은 비자가 필요한 나라가 그리 많지 않은데, 아무래도 비행기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국경을 통과해 육로로 입국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특별히 비자가 필요한지 일일이 알아봐야 했다. 게다가 독일인에 대한 비자, 한국인에 대한 비자 따로 알아보려니 조사에 시간이 조금 더 걸렸던 것 같다. 조사하다가 괜스레 뿌듯했던 점은, 한국 여권이 독일 여권보다 여권 파워가 좋다는 사실이었다. 특히나 우리의 여행 시작인 아시아는 독일인은 비자가 필요하지만 한국은 필요 없는 경우가 많았다.
비자를 알아보고 정보를 수집하면서 우리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루트를 다잡아 나갔다. 하지만 우리가 아시아에서 유럽 쪽으로 넘어갈 때 파키스탄, 이란 쪽에서 카자흐스탄 러시아 쪽으로 넘어가 동유럽을 가려고 보니 열려있는 국경 자체가 확실치 않은 정보가 많았다. 이 부분은 여행하면서 그쪽 국경을 넘어왔거나 넘은 누군가를 아는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해야 할 것 같다.

 독일에 있을 때 기본적인 준비를 모두 했지만, 한국에서도 남자친구는 계속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보를 알아봤다. 마지막으로 몇 년간 들은 노래도 핸드폰에 가득 담고, 비상용 에스디카드도 몇 개 더 구입했다. 준비를 해도 해도 준비는 끝이 나지 않는 듯했고 떠나는 날짜가 다가올수록 설렘 가운데 두려움도 자리 잡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무수히 많은 나라들을 가보았고, 짧으면 며칠, 길게는 몇달에 걸쳐서 여행을 하기도 했고, 고급 지게 호텔에서도 자보았고 기차역 앞에서 쪼그리고 누어서도 자보았지만 이렇게 길고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나는 것은 처음이니까, 그만큼 설레는 마음과 함께 두려운 마음도 함께 들었다. 여행이라기보다는 모험을 떠난다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가방을 조금씩 채워나갈 때마다 이전에 여행가방을 꾸릴 때와는 다른 무수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독일을 떠나기 전에는 몇 달에 걸쳐 집에 있는 티브이 모니터라던가 오래된 가구들을 처분해야 했다. 대부분은 중고시장을 통해 팔 수 있었다.  우리가 가는 이 길이 어쩌면 엄청난 모험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에 있기도 했다. 물론 섭섭한 마음도 컸지만 말이다. 특히나 우리가 키우던 반려견인 로이를 뒤로하고 떠난다는 것을 큰 슬픔과 죄책감이 뒤따르는 일이었다. 로이를 포기하고 떠나는 일은 가족을 버리는 일처럼 느껴졌고, 모험의 시작을 몇 년 뒤로 미뤄야 하나, 아니면 미니밴이라도 사서 여행을 해야 하나 수많은 고민을 했지만, 우리가 달리 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없어 보였다. 우리는 떠나야 했고, 진짜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으며 우리에게 그 기회는 지금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북유럽 기후에 적합한 로이를 데리고 더운 나라들을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로이에게는 독일의 여름마저도 버거웠다. 그렇게 로이는 우리가 독일을 떠나기 한 달 전, 새로운 가족을 찾았다. 여행을 마친 후 로이와의 감격적인 재회를 꿈꿔본다.

 어찌 됐든 계획을 짜고 돈을 조금이라도 더 모으느라 바빴던 여름이 지나가고, 독일 가족들과 일주일간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오고, 한국으로 떠나기 직전에는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했다. 남자친구는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에 많이 아쉬워했다. 독일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가족에게 만남과 동시에 더 큰 작별 인사를 해야 했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우리는 발리로 향했다.

짐싸기를 마친 우리의 가방
길에서의 우리의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 그 길 위에서 만나는 많은 이들과 공유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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