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erce Sep 04. 2023

소가 되고 싶은 너

예로부터 속담에 게으르면 소가 된다고들 한다. 며칠 전 신두리 해안사구 공원에서 갈색 소들을 만났다. 대관령 양떼목장을 표방한 것인지, 정말 주인이 있는 일하는 소들인지, 동물원 코끼리 대탈출 소동처럼 어디에서 탈출한 놈들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소들이 들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소들은 거의 동상처럼 밥도 안 먹고 가만히 멍을 때리고 있었다. 한가로워 보이기도 하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풀을 먹는 것도 아니고 정말 고개를 쳐들려다가 만 상태의 이상하고 불편한 각도에서 머리 위치를 고정시킨 채 꼬리로 파리만 쫒고 있는 것이었다. 작업하다가 멈춰버린 컴퓨터 화면인 줄 알았다.


옆에 있던 남자친구는 소가 부럽다고 했다. 그러고는 다음 생에는 소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의 꿈은 항상 게으르게 늘어져있는 동물들이다. 소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 전에는 개가 되는 게 꿈이었다. 언제나 두발을 쭉 뻗고 무거운 눈커플과 씨름을 하고 있는 강아지들을 보면서 늘 부러워하더니 다음 생에는 개가 되고 싶다고 읊조렸다. 그러더니 잠시 후 맛없는 사료만 먹어야 되니 개는 안 되겠다고 정정했다.


개인적으로 그는 소나 개보다는 고양잇과라고 생각한다. 육식이라 그런지 밖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먹이를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집에 와서는 소파에 길쭉하게 늘어지고 그루밍을 하면서 휴식을 취한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는 쥐를 장난으로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게임을 하러 간다. 아무리 관찰해 봐도 고양이처럼 살고 있다. 그가 소가 돼버리면 분명 너무 지루해서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나대로 소를 키우는 일은 곤란하다. 고양이인 그를 좋아하는 건데 어느 날 소가 되어버리면, 나는 소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최근 유튜브에서 유행하던 '남자친구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의 질문이 생각났다. 바퀴벌레에 비하면 소쯤이야... 마음의 준비를 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인애플을 우연히 발견하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