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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군 Feb 04. 2021

초록 사과와 엔칠라다 (enchilada)

Le extrañamos mucho

“굳이 초록색 사과가 먹고싶대

(He specifically wanted these green apples).”


몇일 전 저녁에 남편과 첫째 세찬이가 근처 그로서리 마켓에서 장을 보고 왔다.

남편은 세찬이가 굳이 초록색 사과를 먹겠다 그랬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래서 이 날은 세찬이가 평소에 잘 먹는 빨간 사과 하나와, 그리고 뜬금없지만 초록색 사과도 두개 사 왔다.


***


남편이 가족들이 보는 주방 달력 1/28일에 큼지막하게 하트를 그려 놓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달째 되는 날이었다.


지금까지 내 꿈에는 두 번 나오셨다.


돌아가신지 사흘 뒤쯤 한번, 꿈에서 얼굴 빛은 조금 어두우셨는데 그냥 침대에 앉아 미소 짓고 계신 모습이었다.

돌아가시기 전 10개월여간 암 때문에 키모테라피 받으시느라 머리카락이 다 빠지셨었는데, 꿈에서는 암 진단 이전의 길고 검은, 결 좋은 생머리 모습이셨다.


그리고 돌아가신지 2주정도 뒤에 또 한번.

집 앞 풀밭이 배경이었고, 꿈에서 시어머니는 첫째 세찬이를 품에 안고 계셨다.

(첫째 낳고 내가 학교 다니느랴, 졸업하고선 일 하랴 밖으로 도는 동안 시어머니께서 아이를 하루종일 봐 주셨었다. 엄마인 나보다도 아이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셨었다.)

내가 시어머니를 부르자 시어머니는 나를 두팔 벌려 꼭 안아주셨다.

꿈에서도 꿈이란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목소리와 안아주신 그 느낌이 너무 선명했다.


내가 두번째로 꿈을 꾼 날 아침, 시아버지가 한 통의 전화를 받으셨었다.

시어머니 화장이 다 끝나고 준비가 되었으니 집으로 모셔가도 좋다는 전화였다.

(시어머니는 아무런 장례식도 원하지 않으셨었다고 한다.

그저 화장만 해 달라 말씀 하셨는데,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화장터가 지나치게 바쁜 탓에 돌아가신 후 2-3주만에야 시어머니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실 수 있었다.)


***


2012년 봄.

지금 남편은 그 당시 남자친구였고 우리는 유기화학 2 수업을 같이 듣고 있었다.(그 전 학기 유기화학 1 실험 반에서 처음 만났었다.)

당시에 남편과 나, 그리고 미군에서 몇년간 복무 하고서 학교로 다시 돌아온 한 한국인 오빠까지 이렇게 셋이 공부를 같이 했었다.

언젠가 하루는 그 오빠와 내가 남편의 집으로 가서 공부를 했다.


공부하고 저녁으로 어머니가 차려주신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었었다.

내 생전 처음 먹어 본 홈메이드 멕시칸 음식이었는데, 메뉴는 엔칠라다 (enchiladas con mole) 였다.


얇은 또르띠아 안에 찢은 닭 가슴살을 놓고 돌돌 말은 다음, 갈색/빨간색 몰레 소스로 덮는다.

몰레 소스가 식기 전에 치즈와 사워크림을 뿌려 먹으면 된다.

구글에서 찾은 이미지


그 날 이후 엔칠라다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멕시칸 음식이 되었다.

이후에 스페인어 수업에서 음식 챕터를 배울때 이 날 먹은 홈메이드 엔칠라다 얘기로 발표도 하고 그랬었다.


***


어젯밤 주방에서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내일 미션이 하나 있어. 내일 오후에 몰레 소스에 닭 육수를 넣고 풀어줘. 너무 묽게 만들지 않게 주의할것!

(I will give you one mission for tomorrow. Use this chicken broth to cook mole in the afternoon. Make sure it doesn’t become too watery!)”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저녁 만드는 일은 거진 남편이 담당 해왔는데, 남편이 하루종일 나가서 일 해야 하는 날에는 내가 가끔씩 저녁을 준비 하기도 했다.

오늘도 남편이 나가 일하는 날이었는데, 내가 저녁 걱정을 몇일 전 부터 하는걸 보고 남편이 미리 귀띔을 해준 것이다.

저녁 메뉴는 엔칠라다 라고, 미리 삶아놓은 닭 가슴살을 찢으며 남편이 말 했다.


***


가족들이 일 하러 나가 있는 사이, 남편 말대로 몰레 소스를 준비 해놓고, 찢어둔 닭 가슴살, 또르띠아 등을 냉장고에서 꺼내 놓았다.


일을 끝내고 돌아온 남편과 시아버지가 저녁 준비를 도와주셨다.

시아버지는 또르띠아에 치킨을 말고, 남편은 몰레 소스를 부어 가족들 명수에 맞춰 접시를 완성하고.


나는 뒤에서 사진 찍고.


다른 가족들에겐 그냥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저녁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저녁 준비 하면서, 저녁 먹으면서 어머니 생각이 자꾸 났다.


저녁은 맛있었다.

그래도 어머니가 해주시던 엔칠라다보다는 아니었다.


***


저녁 다 먹고 저녁 식탁, 주방 치우며 남편에게 말 했다.

“오늘 아침에 세찬이랑 초록색 사과 같이 먹었어.

세찬이가 왜 초록색 사과를 먹고싶어했게?

(Sebas and I shared the green apple this morning.

Do you know why he wanted green apple?)”


“엄마 동영상에서 엄마가 초록색 사과를 먹고 있어서

(In the video we saw, mom was eating a green apple).”


남편은 벌써 알고 있었구나.


아침에 사과를 먹으며 세찬이는 갑자기 “왜 할머니가 동영상 속에서 초록색 사과를 드시냐”며 나에게 물어봤었다.

“할머니가 초록색 사과 드셔서 나도 먹고 싶었어요.”


***


시어머니 돌아가신 후 몇일 뒤 남편이 오래된 동영상 하나를 찾았었는데, 평소에 장난끼 많으시던 시어머니가 초록색 사과 하나를 드시며 혼잣말 하시며 찍어두신 동영상이었다.


사과를 한입 베어 드시고는, 가족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시며 짧막하게 코멘트를 하시는 2-3분 남짓 한 짧은 동영상이었다.

“... 우리 소중한 손자 세바스티안 (세찬이) ... 잠 많은 며느리는 지금 자고 있는 것 같고 ...”


동영상 마무리는 유쾌하게도 (하지만 지금은 볼수록 슬픈)

“그럼 이만 안녕, 친구들! (Adios, amigitos!)”


***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한달도 넘었지만, 아직도 가끔 이게 꿈인가 싶기도 하다.


세찬이가 어쩌다 한번씩 할머니 보고싶다고 얘기 하는데. 나도 어머니가 그립다.

시어머니도 세찬이를, 가족들을 많이 보고 싶어하시겠지?

고통 없는 별나라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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