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더 행복하면 좋겠어요
세찬이가 엄마를 쥐었다 폈다 한다. (미운 네살?)
어디 부딪히거나 다칠뻔한 상황에 “괜찮아? 다쳤어?” 물어보면 “NO!!!” 꽥 소리 지르며 화내기도 하고.
남편이랑 내가 몇번이나 주의를 주고 이런 상황에 화내지 말라고 타일러도 자꾸 소리 꽥 지르고 미운 아이가 된다.
***
지난 주말엔 친정에 내려가 자고 올 계획이었다.
가족들이랑 저녁 다 먹고 난 후, 세찬이가 피아노를 친다고 그러다가 점점 더 낮은 음쪽으로 슬쩍 슬쩍 오더니 결국 피아노 의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가족들 다들 놀라서 “괜찮아?” “어머!!!” 걱정 하는 와중에 세찬이는 떨어져서 아픈거 + 관심이 쏠려 민망한거 겹쳐서 그랬는지 또 소리를 꽥 지르고 미운 아이가 되었다.
“세찬아 너 말 안들으면 우리 지금 집에 갈거야. 그리고 이모 집에 다시 안와.” 나도 모르게 지키지도 못할 말을 뱉고 (친정에 다시 안올 리가 있나..) 그래서 세찬이는 더 화가 나고.
엎친데 덮치고 나도 세찬이도 화가 많이 났었다.
결국 세찬이 똥고집 가족들에게 사과도 안하고 남편과 나는 뱉은 말 지키기 위해 집에 간다고 짐을 다시 쌌다.
입이 퉁퉁 나온 세찬이를 옆에 앉혀놓고 대화를 시도해봤다. 내 감정을 좀 가라앉히고, 세찬이도 조금 차분해진 상태에서 둘이 대화를 좀 하고 나니 둘다 화가 풀렸다.
세찬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들, 엄마, 아빠 모두에게 화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래도 집에는 가고싶다고 세찬이가 그래서 집에 돌아오기로 결정 했다.
화가 났을때는 말도 안듣고 미운 아이지만 화가 풀리면 또 세상 따뜻한 아이.. ㅠㅠ
엄마 가방을 제일 먼저 챙기며 “엄마 가방 깜빡하지 말라고 여기 가져왔어요. 엄마가 이 가방 좋아하니까요. (I brought your backpack so that you dont forget. I know you love this backpack.)” 말해주고
또 가족들이 저녁식사 이후에 먹던 군것질거리 가득한 상 위에서 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젤리들만 봉지째로 챙겨오며 “엄마를 위해 우리 이거 집에 가져가요 (let’s bring this home because this is your favorite candies)” 이러고. ㅠㅠ
미울 때 없이 쭉 말만 잘 들으면 좋겠구만 그래도 아직 아이라 그런지 자기의 화난 감정을 잘 통제 못할때마다 엄마로서 마음이 넘 힘들기도 하다. ㅠㅠ
***
세진이도 어느새 10개월이 다 되어가고 의사 표현을 눈치코치로 잘 배워가고 있다.
손 흔들며 안녕, 머리 도리도리 하며 싫다는 의사 표현, 눈 마주치며 다 안다는 뉘앙스로 씨익 웃기도 한다.
말 소리도 어쩔때 들어보면 제법 높낮이 있게 옹알옹알 하기도 하고. 싫은거 있을땐 꽥 소리 지르기도 하고.
그런데 이 소리 지르는걸 세찬이가 예민해 하며 싫어한다.
“그만!!! 세진이 소리 지를때 너무 싫어요! (Stop it!!! I dont like her when she screams!)”
진작부터 윗니 두개, 아랫니 두개 났었고 요즘들어 세번째 & 네번째 윗니가 나오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평소보다 음식도 잘 안먹으려 하고 또 더 자주 보채기도 하고 그런다.
오늘 저녁시간에도 이것저것 음식 먹여보려는거 다 실패 하고 겨우 음료수랑 뻥튀기 과자만 먹이고 있는데, 음식 먹이려 할때 싫다며 소리 지르는 세진이를 세찬이가 못 견뎌했다.
그러더니 결국 내가 주방과 식탁을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동생이 앉아 있는 의자를 쓰윽 밀어버리기도 하고, 동생이 소리 지를때 같이 소리 지르기도 하고 그랬다.
세찬이는 저녁으로 짜파게티 먹고싶다고 그래서 해줬는데, 또 먹으면서 너무 뜨겁다며 징징, 젓가락질 시도 하는데 면이 얼굴을 때린다고 징징, 면이 너무 길다고 징징, 짜증섞인 말투로 저녁 먹는 내내 징징징징 이었다.
“너 자꾸 징징대면 우리 집에 있는 짜파게티 다 갖다 버릴거야”
또 지키지도 못할 얘기 하며 협박을 하는 나의 모습.. ㅠㅠ 육아, 또 훈육이 정말 어렵다.
평소에도 아무리 작은 거짓말이라도 아이 앞에서 안하려고 노력 하고, 항상 지킬수 있는 약속/말만 하려고 노력 하는데, 내가 화난 상태가 되면 나도 모르게 의도치도 않은 말이 나오기도 한다.
아무튼 내가 짜파게티 다 갖다 버리겠다고 한 말에 세찬이도 화가 더 났고, 나랑 세찬이랑 서로 감정이 격해진 찰나 세찬이가 최후의(?) 카드를 꺼냈다.
“엄마 이제 꽃 안사다줄거에요! (I will never buy you any flowers!)”
아빠나 삼촌들과 마트 다녀오면서 날 위해 골랐다고 가끔씩 꽃들을 사다주곤 하는데 (솔직히 난 꽃을 많이 좋아하지도 않지만), 세찬이가 엄마 생각해서 작은 화분 한두개씩 (아빠나 삼촌들 돈으로) 사다 주는게 참 기특하긴 했다.
그런데 이제 엄마한테 꽃 안사준다고 협박을 한다. 참나..
***
저녁 다 먹고 시간이 흘러 흘러. 갈등 풀리고 서로 기분이 다시 좋아졌는데, 대뜸 세찬이가 하는 말.
“엄마, 엄마가 세진이 젖 먹이는동안 난 그림 그릴게요. 꽃이랑 햇님 그림 그릴거에요. 난 엄마가 더 행복해하면 좋겠어요. (uhmma, while you feed Sejin I want to draw something. I will draw a flower and the sun, because I want you to be happier.)”
하루종일 일 하고 퇴근 한 후, 미운 네살 아들내미랑 저녁 밥상에서 싸우고 나서, 두 아이들 다 잠드는 9시쯤 (육아 퇴근)만을 기다리는 나 — 하루하루가 길고 길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이 그럭저럭 괜찮은 이유는 이제 말과 마음이 통하는 아들이 아무렇지 않게 엄마의 행복을 바라는 게 너무 고맙고 기특해서 인 것 같다.
이러고 나서 또 미운 네살로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기도 하지만..
애들도 다 자고 있고. 오랫만에 브런치도 쓰고 있고
나도 잘 준비 하고, 저녁에 돌리기 시작한 빨래 개고, 세찬이가 그린 그림 코팅 해놓고 이제 자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