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한 사천진에서
지난봄에 큰딸과 단둘이서만 강릉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큰딸이 대학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여 그동안 마음에만 두고 실현을 못했었는데 딸아이가 불현듯 기차표 두 장을 내밀어 이 큰일이 성사되었습니다.
강릉에 도착하여 짭조름한 소금냄새가 흩뿌려진 바람을 느끼며 경포대도 걷고 언제 도착할지 모를 빨간 우체통에 엽서도 넣었습니다. 2시간이란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던 정동진 바다 부채길도 도란도란 걸어 보고, 그 유명한 초당순두부마을에서 진한 두부의 맛도 느껴 보았습니다.
강릉 중앙시장에서는 여러 맛집들이 많아서 무엇을 먹을까 즐거운 고민도 해 보았지요.
저녁 무렵에 딸이 서프라이즈로 준비해 둔 사천진에 오롯이 자리한 펜션에서 딸과
단둘이서 처음 느껴보는 아늑한 시간을 즐겼습니다. 문득 이 시간들이 언제 또다시 올까 아득하게 느껴졌습니다.
눈을 돌려 어둡고 아련한 창밖을 보니 느닷없이 눈시울이 붉어져서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바닷물과 햇살이 섞인 듯한 눈부신 해변을 보며 카페거리에서 새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 바닷가에서 딸의 새끼손톱을 닮은 조개껍질도 주웠어요. 새삼 행복감이 차 올랐습니다.
이윽고,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올 때는 스치고 지나간 것 같은 꿈같은 추억들을 가슴속에 고이 품고 다시 일상으로 데려다줄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딸과 서로의 손을 살며시 잡고 이번 여행에서 못 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으로 내년 새봄에 다시 올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말없이 어둑어둑 까마득 해진 창밖을 보며 두 눈을 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