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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딸

저는 흐드러진 꽃을 닮은 20대에 두 딸을 둔 엄마입니다.

by 오롯한 미애

주방으로 가다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

딸아이를 무심히 봤다.

침대 가득 찬 딸아이에 자는 모습을 보며 우리 딸, 언제 이렇게 커 버렸나 싶다.

이십여 년 전 너를 낳고 매일매일 제대로 잠을 못 잤지. 우주에서 떨어진 아기별이 나에게로 떨어져서 콩알 같은 싹을 피운 건가 허구한 날

믿어지지가 않았다.

병아리처럼 솜털이 뽀송해서

너를 안을라치면 네 자그마한 몸으로 나의 손이 들어갈 것만 같아 덥석 겁이 났었어.

이렇게 구름 같은 아기가 열 달 동안

내 안에서 나를 통해서만 나에 것을 네게 모두 줄 수 있어서, 엄마이 할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을 으스대고 싶기도 했지. 하지만, 행여나 가끔 느끼는 좋지 못한 생각까지도 네게 갈까 두렵기도 했어.

또한 몸에 어 있지 않던 소소한 습관과 양을 따지기에 앞서 입맛 가는 대로 먹던 음식 하나하나 신경을 는 것도 벅찼어. 러다 보니 차츰 익숙해서 습관이 되어 갔어.

본래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내 자신조차 낯선 나를 돌아보기도 했지.

그렇게 살얼음 위를 걷는 맘으로 열 달을 엄마 안에서 함께 있다가 티 없는 맑은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젖을 먹고 엄마에게 더 많은 것을 주었지.

네 하얀 눈동자는 세상에 온갖 것들에 물들지 않은 순수 그 자체로 온전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어.

내가 이 맑고 영롱한 생명체를 열 달을 귀하게 품고서 억만금에 아픔을 뚫고 현실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어. 세 달이 한 달 같던 시간이 네 번 지나고, 다시 제자리 첫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 줄 때까지도 새록새록 믿어지지가 않았지.

처음 엄마라고 나를 부르고,

젖을 먹여 뉘이니 혼자서 뒤집고,

배밀이를 하고 방바닥에 무엇인가를 꼼지락꼼지락 주워 먹으며, 의자를 붙잡고 한걸음 뒤뚱 설 때면 그 기쁨과 놀라움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단다. 부모들은 모두 허풍쟁이라

하지만, 그 말은 부모만이 공감 못 할 것 같아.

거울을 보다 회색으로 바뀌고 있는

머리카락을 보니, 마냥 신기했다.

눈가는 웃는 모습에 따라 주름이 잡히고 입옆에 팔자주름은 어느 틈인가 원래 그랬었나 자리를 잡고 있다.

무심코 주방으로 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춰

침대 끝으로 발이 한 뼘이나 나와있는 딸에 모습을 봤다. 내가 세월 따라 나이가 들어가는 동안 두 딸들도 이렇게 자랐구나 싶었지만, 저 풋풋하고 싱그러운 5월에 나무 같았으면 좋겠다.

청량한 바람에 실려서 어디서부터 담아 왔는지 모를 코끝에서 살랑이는 여리한 냄새, 그냥 연둣빛 오월에 그 나무들처럼, 열매 맺지 않아도 그대로가 싱그러운 오월에 나무, 바람결에 스쳐도 나뭇잎이 떨어지지 않는 오월에 그 옅은 나무였으면 좋겠다.

욕심 없이 세상모르고 살아도 주위에 따뜻한 마음을 표현할 줄 알고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의 위대한 힘을 믿는 사람으로 살길 바란다.

침대밖으로 한 뼘이나 불쑥 나온 딸의 발에 말려 올라간 이불을 끌어 내려서 덮어준다. 올봄에는 이불을 좀 더 큰 것으로 사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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