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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상자 Mar 09. 2023

요알못 10년 차 주부, 요리 학원에 가다

조금씩 요리와 친해지는 중


오늘은 네 번째로 요리 학원에 간 날이었다.


올해로 결혼 10년 차인 나는, ‘요알못’ 주부다. 말 그대로 요리를 알지 못하는 주부. 뚝딱뚝딱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던 엄마와는 달리 난 예전부터 요리에 관심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요리를 잘할 수 있는 기회가 세 번 정도 있었다. 혼자 자취했을 때, 신혼 초, 그리고 첫째 아이 이유식 시기.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자취했을 때는 햇반과 김, 참치를 베이스로 집에서 가져온 반찬으로 연명했고, 신혼 초에는 몇 번의 시도를 하긴 했으나 바로 임신을 하는 바람에 좋은 핑곗거리가 생겨버렸고, 아이를 낳고서는 이모님께서 요리를 너무 후다닥 잘하시는 분을 만났기에 모든 요리를 일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것은 다 핑계고, 한 마디로 난 요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내가 요리학원에 다니다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하하.



시댁에 가서 ‘저 이제 요리학원 다니기로 했어요!’ 했더니 정말 모두가 놀라며, 특히 요잘알 아가씨가 너무도 깜놀하며 물었다.

“아니 그 동기가 대체 무엇이에요?”


1년 휴직을 결정하면서 이 기간 무얼 하며 보낼까 생각해 봤는데, 희한하게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이 ‘요리를 잘해야겠어’였다. 그리고 그 생각의 배경엔 쑥쑥 자라 가고 있는 우리 애들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우리 딸이 ‘엄마 이거 먹고 싶어~’ 하면 ‘어? 그거 엄마 못하는데. 대신 이거 주면 안 될까?’라든지 ‘내일 이모가 오시니까 내일 엄마가 부탁해 볼게.’라는 말을 뱉는 나를 보면서 엄마라면서 딸내미에게 이런 거 하나 못 해주는 것 같아, 그게 내심 미안하고 또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요리 잘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언젠가부터 마음은 있었지만 워킹맘 엄마는 시간이 너무나 없었고, 그랬기에 ‘언젠가 휴직하면  꼭 요리를 해야겠어!’ 다짐했던 것이다. 그래서 목돈은 들지만, 나를 위한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한 투자라 생각하고 과감히 질렀더랬다.





처음 요리 학원에 갔던 날,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8명의 수강생이 모여 있었는데, 나 빼고 모두가 남자였던 것이다. 정말 눈이 휘둥그레지는 순간이었다. 20대부터 60대까지의 다양한 연령대의 수강생들은, 그날의 요리인 뚝배기 불고기와 도토리묵무침을 배우기 위해 너무도 열심이었다. 혼자 생각했다.

'이 분들은 어떤 이유로 이곳을 찾았을까?'


젊은 분이야 취업을 위해서일 것 같았고, 60대 남자분은 취미로 배우러 오신 걸까? 아니면 자영업을 시작하기 위해 찾으신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 분들 한 분 한 분의 스토리, 앞치마를 두르고 이 방에 모여 뚝딱뚝딱 요리를 만들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도 하나의 프로그램이 나오겠다,라고. 그리고 새삼 이 분들은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란 생각도 들었더랬다.

‘아니 저 여자는 저 나이 되도록 요리를 못하나?’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닌가? 하고.

물론 이건 내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지나친 상상이겠지만.




우리 요리학원은 쿠킹달력을 보고 원하는 요리가 있는 날의 수업을 미리 예약해 오는 시스템이다. 오늘의 요리는 ‘돼지고기고추장찌개’와 ‘메추리알장조림’, 그리고 ‘두부조림’. 오늘 강의실을 들어서자마자 내 눈을 사로잡았던 건, 머리가 희끗한 한 노부부가 열심히 선생님 설명을 듣고 있는 장면이었다.

'우와. 저분들은 어떤 사연으로 요리학원에 오시게 된 걸까.'


혼자 생각하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학원은 선생님의 설명과 요리 과정을 한 시간가량 보고 들은 후 자기 자리로 돌아가 레시피대로 요리를 스스로 해보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 노부부는 내 옆자리에서 서로 의지 하며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여보, 양념장 좀 만들어와요. “

“응? 양념장?”

“네. 앞에 가서 선생님한테 좀 만들어달라 그래.”

“알았어.”

“제대로 만들어와야 해요.”

(뚜벅뚜벅)



이렇게 할아버지는 느릿느릿하지만 신중하게 임무를 수행해 오셨고, 할머니는 다소 정신없어하시면서도 할아버지의 서포트 아래 미션을 완성해 가셨다. 중간중간 나에게 ‘이 순서 맞죠?’라고 물어보시면서 말이다. 그 모습이 어찌나 보기 좋던지, ‘나도 남편과 저렇게 늙어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



드디어 정신없는 2시간 30분이 지나고 요리도 완성!


그때가 되어서야 알았는데 할아버지 연세가 글쎄 90세이시란다. 그리고 이 요리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말씀하신 것도 할아버지시란다. 학원에서는 너무 고령이시라 반대했지만 할머니께서 ‘내가 서포트할 테니 받아달라’고 요청해 수업을 듣게 되셨다고 한다. 와. 아흔에도 이렇게 무언가 도전할 수 있구나. 너무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나를 보고 빙긋이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우리, 동기네.”



내가 답했다.

“맞아요 할아버지, 우리 동기예요.”


나 또한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었다.





선생님이 만드신 요리.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이렇게 뚝딱, 맛있고 멋있는 요리를 해 낼 수 있겠지?



하나의 사람은 하나의 인생이라지. 오늘도 12명의 각자의 인생이 모여 하나의 요리를 만들어낸다.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어떤 삶을 살다가 수요일 아침 10시에 여기에 모이게 되었을까. 어찌 되었든 보글보글 냄비가 끓는 기분 좋은 아침, 어쩌면 나는 조금씩 요리가 좋아지는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각자의 기분 좋은 도전 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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