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도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을까
몸과 마음이 지쳐, 아니, 사람에 지쳐 무급 휴직을 결정한 지 이제 3달이 다 되어간다. 보기 싫던 사람 안 봐도 되고 내 시간도 생기고 다 너무 좋은데 그래도 매달 통장을 스치던 월급이 이제 0원인 시절이 되고 나니 내 돈 씀씀이에 무척 신경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27살 이후, 많은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일해서 번 돈으로 생활해 왔었는데 갑자기 수입이 빵원이 되고 나니 음...?~ 싶은 것이다. 고맙게도 남편은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까 당분간 돈은 신경 쓰지 말고 살아!‘라고 통 크게 외쳐주었지만,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디 그러한가. 회사 다닐 때는 자연스레 마시던 식후 아이스라떼가 지금은 ‘원래 아이스라떼가 이렇게 비쌌어?! 이거 너무 한 거 아니야??’ 생각 드는 걸 보면 나도 지금의 내 상황이 아직 어색한가 보다.
회사 때 마시던 커피는 계속 마시고 싶고, 친구들도 만나고 해야 하는데 마냥 쓰기만 할 수는 없으니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쉬자고 휴직 결정을 내려놓고는 아르바이트가 웬 말인가. 그래서 갑자기 떠올린 것이 당근마켓이다. 당근 초창기, 내가 필요 없는 물건이 다른 사람에겐 유용한 물건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일석이조로 돈도 벌 수 있다는 기쁨 때문에 참 열심히도 집에 있는 물건들을 내놓았었더랬다. (이러다 집까지 팔겠다고 이모님이 그러셨었지. 흠.) 그러다 사는 게 바빠 지난 몇 년간은 집 정리는 생각도 못했는데 이제는 ‘때가 되었다‘ 싶었다. 아니 사실은 소소하게나마 커피값이라도 벌고 싶은 마음이 ’크게’ 들었던 거다. 하하.
첫 번째 타깃은, 열 살이 된 딸내미의 작아진 옷들이다. 진짜 아이들은 어찌나 부쩍부쩍 크는지, 예쁘다고 사다 준 옷이 금세 작아져버려 아까운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이것도 서랍을 정리해야지, 정리해야지 해놓고선 하세월이었는데 이젠 시간도 있겠다, 마음먹고 오늘 서랍을 뒤집었다. 그리고는 지금 봐도 예쁜 옷, 쓸 만한 옷들을 몇 개 골라내어 우리 집에서 제일 조명빨 잘 받는 곳에 걸어놓곤 찰칵, 찰칵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다른 당근러들의 문구들을 모니터 한 후 (당근도 글빨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별 거 아니지만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가는 문구들이 있더라.) 나만의 워딩으로 재창조한 후 글을 올렸다. 이것도 브런치 글쓰기처럼, 등록버튼을 누르고 나면 계속해서 다시 고침 눌러 들어가 보기 일쑤다. 사람들이 내가 올린 판매글을 보고 있나, 가격을 너무 비싸게 올렸나? 하트는 몇 개나 찍혔을까 등등등, 순간이지만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오간다.
그런데 1시간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없다.
‘음... 좀 유행이 지난 옷을 올린 걸까...’
2시간이 지났다. 또 앱에 들어가 봤지만, 그새 하트만 2개 찍혔을 뿐 소식이 없다.
‘아... 아무래도 괜히 올린 것 같은데...‘
나의 급한 성격은 이럴 때에도 빛을 발한다. 뭐든 바로 실행하고 바로 결론을 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언제 선택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참 나답다. 아 이거 적성에 안 맞는데 어쩌지.
그렇게 5시간 반이 흘렀는데, 핸드폰에서 갑자기
“당근!”
한다.
오 이럴 수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둘째 책을 읽어주다 냅다 핸드폰으로 뛰어가 급하게 비밀번호를 풀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거래 가능할까요?”
거래도 밀땅인데 잠시라도 뜸을 들이고 답을 해야 하거늘, 또다시 급함 모드 발동.
“네 당연히 가능하죠. 언제 뵐까요? 저는 지금 뵐 수 있습니다. “
라고 1초 만에 답 완료.
상대방도 지금 시간 괜찮다는 답을 받자, 냅다 패딩을 둘러맸다. 내복 바람의 나의 두 아이들은 오잉?! 하는 얼굴로
“엄마 갑자기 어디가?!“ 물어본다.
“엄마 돈 벌고 올게!! 조금만 놀고 있어!!!”
세상 씩씩하게 답한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신이 나는 거다. 마치 누군가 내가 심혈을 기울여 찍은 옷 사진들의 미학을 알아봐 주는 것처럼, 간절함을 담아 고치고 고친 당근 판매글의 정성을 알아주는 것처럼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은 거다. 하하. 그래서 밤 9시, 쏜살같이 달려 나가 그렇게도 반가운 ‘손님’을 만났다.
7천 원.
비싸게 주고 샀던 옷 가격에 비하면 적다면 적은 금액이지만, 우리 딸내미가 너무도 좋아하던 옷을 누군가가 예쁘게 입어줄 생각을 하니 뿌듯했다. 거기다 땅을 파도 파도 절대로 나오지 않을 7천 원이라는 돈을 벌었다는 생각에, 룰루랄라 기분이 참 좋은 거다. 집에 오자마자 지갑 안에 7천 원을 소중히 보관하며 생각했다.
“아싸아, 내일 커피값 벌었다아!”
소소하지만 뭔가 밥 값을 한 기분이다. 앞으로도 집 안 구석구석, 내게 필요 없는 물건들을 부지런히 찾아내고 열심히 정리하리라. 그래서 절대 실현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이루고픈 꿈인 미니멀리스트가 됨과 동시에, 내 커피값도 쏠쏠히 버는 휴직자가 되어보자! 다짐해본다.
(이러다 아무 하트도 달리지 않고 며칠이 지나도록 ‘당근!’ 외침이 없으면 시무룩할 거면서, 지금은 참으로 신나 있으니 ‘나’란 사람, 참 단순하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