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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칫거리 Nov 17. 2019

이태리 피자는 새발의 피'자'

피렌체 두오모성당과 시뇨리아 광장

단테 생가 앞 노래하는 행위예술가




피자 투정
이탈리아 피자보다 K-피자


"피자 맛이 왜 이래”

마르게리따 피자를 먹고 하신 말씀이다. K-피자에 익숙해진 할머니께 토핑 없는 딱딱한 피자는 짜게만 느껴졌나 보다. 이탈리안 셰프가 만들고 이탈리안 웨이터가 서빙한 피자도 길들여진 입맛 앞에선 힘을 못 쓴다.


"이건 양갱이 아니에요"

회식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다. 고급 일식당 후식이었고 인턴인 내게 편한 자리도 아니었지만 먹는 입이 말하는 입을 이겼다. 직접 쑨 팥으로 만든 할머니표 양갱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허여멀건하고 불투명하고 무엇보다 밤이 없는 푸석한 덩어리는 내게 양갱이 아니었다. 찾아보니 일본식 양갱인 것 같았다. 그래도 마찬가지다.


미켈란젤로 언덕


고급 일식집 양갱도 국내 명인이 만든 양갱도 소용없다. 내가 먹고 싶은 양갱은 하나니까. 더 이상 할머니표 양갱을 먹을 수 없을 때를 대비하기라도 하듯 입맛을 빌미로 떼를 쓴다. 할머니 앞에서 투정을 부리면 언제나처럼 못 이기는 척 들어주실 테니까. 떼를 써도 소용없는 날이 오면 어떡하지. 달콤한 양갱을 떠올리는 마음이 쓰다.




할머니가 작은 건 조각품 탓


사진에 안 담긴다


로마에서 버스를 타고 달려 피렌체에 도착했다. 울퉁불퉁한 바닥 때문에 할머니 손을 꼭 쥐고 걷는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골목길 사이로 베이지색 건축물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여행 와서 가장 설렌다. 두오모 성당이 내 눈 앞에 보이는 순간 머릿속에서  <냉정과 열정 사이>가 재생된다. 상상보다 거대하고 생각보다 주황주황하다. 그리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다. 왼쪽 문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면 남녀 주인공이 재회한 옥상이 나오지만 공사 중이다. 꼭 다시 와서 463계단을 올라 영화 속 종소리를 들으리라 기약한다.



두오모 성당을 뒤로하고 다시 좁은 골목을 걸어가면 시뇨리아 광장이 나온다. 피렌체 공국 시절 시민들의 토론장으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같은 르네상스 시대 조각품의 모조품으로 장식되어 있다. 계단 밑에서 할머니와 한창 사진을 찍고 나니 할아버지가 옆에 없다. 주위를 둘러보니 계단을 올라가 진지하게 작품을 둘러보시는 중이다. 서양사에 대해 더 공부하고 오지 못한 게 아쉽다고 하신다.


할머니도 천천히 조각품을 감상하고 계시는데 웬걸. 할머니가 왜 이렇게 작아 보이는지. 구도 탓인가 싶어 여러 각도에서 둘러보지만 소용없다. 아! 조각품이 너무 큰 탓이구나. 그럼 그렇지, 할머니가 이렇게 작을 리 없다고 되뇌며 피렌체를 떠난다. 내일이면 물의 도시 베네치아다. 버스 밖 창밖은 깜깜하지만 마음은 두오모 성당을 향할 때처럼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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