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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칫거리 Jun 20. 2020

가는 날이 가면축제 날

베네치아 가면축제


가는 날이 가면축제 날


“내일은 캐리어에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 입으세요” 인솔자님 말씀에 설레는 분위기가 감돈다. 이미 여행하고 있지만 또 떠나는 기분이다. 드디어 베네치아! 유럽여행의 꽃이라는 도도한 명성에 걸맞게 도시의 문턱은 생각보다 높았다. 도시로 진입하는 배에서 내리려다 할머니께서 넘어지셨기 때문이다. 승하차를 돕는 직원이 동료와 시시덕거릴 때부터 불안하더라니. "눈 앞에서 노인이 내리는데 안 잡아주면 어떡해요?" 나는 농땡이 피우던 직원에게 항의하면서도 내가 먼저 내려 잡아드릴  걸 후회했다. 할머니를 가까운 카페 의자에 앉히고 바지를 올려보니 피가 흐른다. 쓸 일 없을 줄 알았던 반창고를 꺼내 붙였다. 다행히 무릎이 까진 걸로 끝났지만 80대 골절 위험성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속상한 나를 달래시려는 듯 할머니는 “괜찮아. 날씨 좋네~”하며 웃으신다.



그래, 기분 상해있기에는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오른편으로 산 마르코 광장을, 왼편으로 바다를 감상하느라 바쁜 사이 특이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눈에 띈다. 막 <베니스의 상인> 무도회 장면을 찍고 나온 차림새다. 알고 보니 1년에 한 번뿐인 가면축제 기간.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에 운 좋게 오다니. 원래 축제는 저녁에 시작하지만, 그날은 신기하게 몇 명이 낮시간에 나왔다고 한다. 할머니 표현으로는 가는 날이 장날, 내가 쓰는 말로는 ‘될놈될'(될 놈은 어떻게 해서든 된다)이다. 연신 셔터를 누르다 가면 뒤 정체가 궁금해진다. 가이드님이 그들은 의상을 1년 내내 만들며 축제 기간을 기다리는 시민들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거리의 예술가들과 달리 동전 통이 없던 이유가 있었구나. 색다른 문화를 즐기게 해 준 가면축제 참가들에게 감사 인사를 남긴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가보고 싶어” 어쩌면 할머니의 작은 한 마디가 이번 여행을 쏘아 올렸을지도 모른다. 막연히 상상하셨을 장면이 이뤄지는 순간. 곤돌라를 타고 물의 도시 구석구석 누빈다. 아기자기한 다리, 알록달록한 건물, 사방에 낀 물 때조차도 낭만적이다. 특히 수염이 덥수룩한 뱃사공이 압권이다. 할아버지 재직 시절 전남 고흥으로 발령이 나서 혼자 지내셨을 때 얘기가 떠오른다. 엄마와 삼촌들이 방학을 맞아 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에 처음으로 뱃사공을 봤다. 섬진강 한편에서 소리치면 뱃사공이 뗏목을 끌고 와 노를 저어 건넜다고 한다. 시골이라 아마 마지막 남은 사공이었을 거라고. 두 분이 외국인 뱃사공을 신기해하는 동안 나는 뱃사공의 존재 자체를 신기해하며 웃었다.



이번엔 넘어지지 않으시도록 조심하며 수상택시에 탄다. 뒷좌석에 선글라스를 쓰고 앉아있는 할머니 모습이 당신 배인 듯 퍽 자연스럽다. 운전대 앞쪽으로 나가 바닷바람을 쐰다. 베네치아가 이렇게 넓었구나. 일행이 탄 수상택시 대여섯 척이 앞뒤로 함께 이동하니 학익진을 펼치는 기분이다. 배터리가 부족해 내 송신기만 잠시 꺼놓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브라바!” 감탄하신다.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전공하신 가이드님이 오페라 곡을 부르셨다고 한다. 에메랄드빛 파도가 도시를 감싼 채 넘실거린다. 일렁이는 게 물결인지 내 마음인지 알 수 없었다.


짠내 나는 부둣가


샛노란 식탁보가 눈에 띄는 노천카페에 들어갔다. 혼자 화장실에 가려는 참에 할아버지께서 종업원에게 메뉴를 물어보시는 걸 봤다. 목이 많이 마르신 줄 알고 질문을 가로채 주문을 마쳤다. 그때는 별 생각 없었지만 여행이 끝나고 되돌아보니 아차 싶다. 십 수년 전 하와이 여행에서 밤낚시를 하는 외국인 꼬마에게 먼저 다가가 대화를 나눴던 걸 아직도 기억하시는데. 유럽에서도 당신께서 커피를 직접 시키고 싶으셨던 건 아닐까. 영어교사셨던 실력이 외국에서 아직 통하는지 확인해보고 싶으셨을 텐데. ‘제가 다 해드릴게요! 제가 잘할 수 있어요!’ 의욕이 넘치는 나는 물 한 잔 시킬 틈조차 드리지 않았다.  기저귀를 갈아주셨던 조부모님 앞에서  그렇게 기똥찬 척하려고 했는지. 다음 기회가 주어지면 더 잘해야지. 아니, 더 틈을 드려야지.



여행에서 가장 감정이 격했던 순간은 카페 앞 부둣가였다. 여행 초반부터 수강신청 문제가 터진 터였다. 시차가 반대인 학교 행정 시간에 맞춰 연락하느라 몇 시간 못 잔 상태. 두 분을 카페에 모셔 놓고 한국 회사와중국 학교로 내내 국제전화를 해댔다. 어렵게 합격한 자리마저 날아갈 위기에 처하자 눈물이 터졌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쳐다봤지만 어쩔 수 없었다. 흑역사를 만들고 아무 일 없는 척 돌아와 반쯤 녹은 젤라또를 먹었다.


아시는데 모르는 척해주시는 건지 두 분께서는 내가 통화하는 동안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고 얘기해주셨다. “이탈리아에서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타 먹으면 사람들이 촌스럽게 본다고 했잖아? 그래서 이 쓴 걸 그냥 마시려니까 종업원이 와서 막 슈가! 슈가! 이러는 거 있지? 설탕 넣어 먹으라고. 우리가 얼마나 세련된지도 모르고 말이야”


노 슈가! 노 슈가!

그제야 웃음이 터지며 긴장이 풀린다. 결국 잘 해결됐지만 아등바등하다 부둣가에서 울던 기억은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가장 고마운 사람들은 “괜찮아”라며 날 진정시켜준 사람들이었다. 여행 내내 한 발짝 뒤에서 기다려주시던 두 분이 그날따라 더 감사하게 느껴졌다. 따스한 햇살 아래 한 꼬마가 연을 날린다. 부둣가에서  바람이 불어왔지만 설탕  에스프레소는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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