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도 존재했던 그 것.
유행어가 참 많고도 빨리 변하는 한국.
이십 대 후반부터 나는 이런 유행어에 공감이 더뎌져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며칠 전, 동생과의 대화에서 "존버(존나 버티기)"라는 단어가 튀어나왔고, 이 단어는 나의 인생 결정에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현재, 호주에서 어린이집/유치원 교사를 하고 있는 나.
코로나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호주도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직업을 잃었고, 대부분의 오피스 직원들은 재택근무를 시작했으며, 사람들은 패닉 바잉(Panic Buying-닥치는 대로 사거나, 특정 물품을 사재기하는 것)을 하기 시작했고, 호주 총리는 워홀러, 백팩커들 등 자신을 경제적으로 부양할 능력이 없으면 조국으로 돌아가라고까지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어린이집/유치원은 계속해서 문을 열어야 한다고 발표했다(심지어 어린이집은 이번 주 월요일부터 무료 서비스가 되었다).
나는 3월 말, 나를 보호할 아무 장비가 없는 상태에서 계속해서 일을 나와야 하는 상황에, 모든 것이 불안정한 상황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3주 휴직서를 냈다.
그리고 휴직계를 쓴 지 일주하고도 반이 된 이번 주 어느 날, 유치원 원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There are two choices, Jobseeker or Jobkeeper."
잡시커(Jobseeker)는 일터로부터 해고된 뒤, 정부에게 실업자 보호 혜택을 받는 것이며, 잡키퍼(Jobkeeper)는 일터로 다시 복귀하되, 정부에서 일터에게 도움을 주는 돈을 받는 선택지였다.
일터에 나가는 것이 무서워 3주 휴가를 받은 상황에 이 휴가계가 끝나면 다시 유치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후자의 선택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솔직하게 집에서 쉬면서 실업급여(한 주 당 세전 550불)를 받는 게 더 솔깃한 선택지였다. 게다가 우리 유치원은 꼼수를 써가며, (혹은 정말 재정적으로 어려워서) 우리 급여를 예전과 똑같이 줄 수 없고 정부에서 주는 돈(한 주 당 세전 750불)만이 가능하다고 얘기하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나는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
존버하면 승리하기 때문에...
물론 쉽게 이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아직도 일에 돌아갔을 때를 생각하면 나의 안위에 대한 걱정은 크다. 하지만 훗날에 일자리를 바꾸게 되는 일이 생겼을 때, 경력에 공백이 있는 것이 나에게 불리하면 불리했지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존버 해야지!
돈이냐 건강이냐 이분법적인 논리에 닥쳤을 때, 나의 처음 선택은 건강이었다.(그래서 3주간의 휴가계를 낸 것이고) 하지만 이 사태가 한, 두 달 안에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장기적으로 봤을 땐, 그나마 돈줄이 아예 끊겨버린 사람들보다는 돌아갈 일터가 있는 내가 다행이라는 생각이 아주 살짝쿵 들었다. 그렇다면 또 한 번 존버 해야겠네.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존버가 호주에서도 존재한다.
모두의 애나
호주, 멜버른에서 차일드케어 에듀케이터로 일하며 먹고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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