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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냄 Oct 20. 2024

여행의 시작. 에피소드를 곁들인

잠시섬으로 가는 길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이었다.

잠시 섬에 가기로 한 날인데, 연이은 야근에 바빠 짐을 거의 싸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다니...


*잠시 섬 : 섬(강화도)에서 천천히 머물며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생각보다 먼 길인데,, 갈 수 있을까....?'

퇴근 전부터 고민을 했다.


잠시섬에 당첨되었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는 설레고 들떴었는데, 당일이 되니까 매우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비가 와서 그런 것인지, 오늘 회사에서 진을 빼서 그런 것인지 오락가락한 내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결국 고민은 고민으로만 끝날 것 같아 일단 가보자고 결심했다.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가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옷가지와 생필품을 챙기다가, 해야 할 일과 읽고 싶은 책짐을 싸는 내가 너무 웃겼다.

쉬러 가는 것인데 말이다.


그래도 '해야 할 건 해야 하니까..!'라고 나 자신을 합리화하며 짐을 챙겼다. 백팩 하나로 끝내려던 짐은 백팩에 숄더백까지 늘어났다. 

비가 오니 우산까지 챙겨 겨우겨우 출발했다.



집을 나오니 비는 거의 그쳐갔고, 비 온 뒤의 차가운 공기가 오히려 상쾌한 기분을 들게 했다. 막상 발걸음을 떼기 시작하니 고민은 사라지고 설렘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강화에 가는 길. 집 앞의 정거장에서 강화로 가려면 중간 지점인 김포에서 환승을 한 번 해야 했다. 네이버 지도가 알려준 환승지점은 '청룡회관' 앞. 환승 지점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한 명씩 내리기 시작하더니 버스에는 기사님과 나. 이렇게 두 명만 남았다.


비도 오고, 저녁에다 길은 점점 구불구불해지는데, 환승지점은 다가오고...

'설마 저기에 내리겠어?!'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그곳에 내렸다.

내가 내리자마자 버스는 휭-하고 눈앞을 사라져 갔다.


양쪽으로 풀이 우거진 일 차선 도로에, 다음 버스 예정인 안내판만 있는 정류장.

참고로 지금은 비가 추적추적 오는 깜깜한 밤이다..!


정류장인데 의자도, 불빛도 없다니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다음 버스는 10분 뒤에 온다고 한다. 눈앞이 깜깜했다.

진짜 나하나 없어져도 아무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 제일 무서웠던 것은 한 오토바이가 내 앞을 두 번 지나간 것.


안 되겠다 싶어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는데, 아무도 받지 않았다. 불안함과 초조함은 커져만 가고 한 친구가 전화를 받자마자 저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친구가 전화를 받았다는 안도감에 불빛이 보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멀리서 볼 때는 '예약'이라고 적혀있는 택시였는데 가까이 올 수록 '빈차'로 보이는 것이다. '내가 제대로 본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미 택시는 나를 지나쳐가고 있었다. 지나간 택시 뒤로 급하게 손을 뻗었다. 다행히 택시 기사님은 차를 세우셨고, 그 짧은 순간이 1시간처럼 느껴졌다.


택시를 타니, 이전보다는 불안감이 줄었지만 저녁에는 택시를 거의 타지 않는 나의 원칙상 택시 안이 또 하나의 공포였다. 친구와의 통화를 끊지 않고 있었으며, 나의 불안감을 어렴풋이 눈치챈 택시 기사님은 이리저리 말을 걸어주셨다. 결국 친절한 기사님과 힘이 되어준 친구 덕분에 김포에서 강화까지 넘어올 수 있었다.


택시에서 목적지에 내렸는데 아직도 비는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통화로 내 곁에서 함께해 준 친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다시 지도 앱을 켜서 아삭아삭 순무 민박에 도착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방 배치를 받았다. 받자마자 긴장이 풀려 따신 물에 샤워를 하고 10시를 기다렸다.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할지 너무 궁금했고, 도착하니 들뜬 마음도 가득이었기 때문이다.


10시가 되었고, 2층으로 내려갔다. 게스트하우스의 호스트인 베니스님께서 순무차를 내어주시며 오늘의 회고 시간이 시작되었다. 느릿한 음악과 함께 자기소개, 오늘의 하루는 몇 점인지에 대해 나누는 시간.

회고 시간의 게스트로 루아흐의 사장님께서 오셨는데, 재미있게 말씀해 주셔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외에도 같은 방을 지내는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아! 나 진짜 잘 왔구나!'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이렇게 강화에 도착하고 날이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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