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는데, 아침 8시에 눈을 떴다.
'출근 날도 아닌데 이렇게 일찍 일어나다니...!'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내가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는지 안다.
아주 설렌 마음이 아침 일찍 눈을 뜨게 했다는 걸.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흥얼흥얼 거리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장기간으로 나만의 시간을 가지러 떠나온 것이기에 유독 더 들떠있었다.
전날 밤부터 비가 와서 여전히 오늘까지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보았는데 이토록 햇볕이 따사롭다니..!
슬렁슬렁 쉬어야겠다는 전날 마음가짐과 다르게 '그럼 나가야지!'라는 생각으로 2층 거실로 내려왔다. 전날 밤 맛있게 마셨던 순무차를 준비해 두고 일정이 없던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날씨가 좋으니까!'라는 생각으로 나의 여행 계획의 시간은 길어졌으며.. 결국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다.
엄청 좋은 곳으로 가고 싶은 욕심에 고민이 길어졌는지, 전날 회사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서 더 이상의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아서인지, 무기력한 나의 마음 상태가 고민이 길어지게 한 것인지, 사람의 마음은 특히 내 마음은 참으로 복잡하다.
'안 되겠다! 조식부터 먹자!'라며 10시 반이 넘어서야 게스트하우스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같이 나가자는 게스트분이 아니었으면 나는 조식도 먹지 않고 12시까지 여행 계획에 대한 고민만 했을 것이다...!
바깥바람을 쐬니, 하늘은 무척이나 파랗고, '잘 나왔구나!', '나 진짜 여행 온 것이 맞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식을 먹으러 풍물시장으로 가는 길에 어젯밤에 나누었던 대화 속에 있었던 '펫클럽'이라는 가게를 보았다.
실제로 보니 연예인을 만난 것같이 즐거웠다. 대화 속의 장소를 실제로 마주쳤기에..!
크크 이렇게 신나하며 풍물시장으로 입성! 시장을 너무 좋아하는 나로서는 베이스캠프 근처에 시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건 보오랗빛의 순무! 크으 첫 만남이 귀엽고 색이 강렬해서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순무와의 만남은 결국 다시 강화로 돌아와 순무김치를 사게 만들었다..!
풍물시장은 건물 안에 있는데, 2층에 들어서자마자 상인분께 "키크신 분이 하는 토스트집이 어디 있나요?"를 계속 물으며 길을 찾았다.
호스트 베니스님이 보이는 순간! 잘 찾아왔구나 싶었다.
'드디어 조식이다!'
어제 같은 방의 게스트분께서 에그햄치즈토스트를 추천해 주셔서 아침으로 먹었는데... 완!전! 맛있었다..!
오랜만에 먹는 대학교 앞 토스트 맛이랄까...!!!! 대학생 때 아침으로 토스트 먹던 시절이 생각이나 마음이 따뜻했다.
맛도 물론이고, 베니스님의 정성이 가득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조식이었다.
청도 직접 만드시길래 모과사과차를 함께 먹었는데... 아침으로 먹기 참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모과사과차는 다시 한번 더 강화에 돌아가서 아침으로 먹었다..!)
같이 아침을 먹으신 분은 개천절이어서 마니산으로 가신다고 하여 마음이 조금 흔들렸지만.. 베니스께서 '전망대 좋아요!'라는 말에 강화 평화전망대로 가기로 결심.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전망대로 가는 길. 구불구불한 시골길과 정겹고도 따뜻한 풍경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정말 강화에 오길 잘했다. 가는 길과 풍경 모두 지친 나의 마음에 위로가 되어 주었다.
버스에 한 할머니가 타셨다. 할머니는 허리에 찬 가방에서 주섬주섬 지폐와 동전을 꺼내어 기사님 손에 꼬옥 쥐어준다.
왜 그런가 유심히 보았더니 일반 버스와는 다르게 오락실처럼 지폐를 밀어 넣는 지불방식이 할머니는 불편하셨나 보다.
할머니는 기사님 손에 돈을 꼬옥 쥐어주고 빈자리를 찾아 앉는다. 기사님은 당연하다는 듯 지폐를 기기에 밀어 넣고 버스를 출발시킨다.
할머니들은 버스에 타자마자 버스 안을 휘휘-둘러본다.
친구를 발견하자마자 후다닥 자리로 달려간다. 먼저탄 친구 할머니는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치며 앉으라고 하기도, 빈자리를 휘- 손짓으로 가리킨다.
할머니가 앉으신 걸 거울로 확인한 버스기사님은 출발한다. 자리에 앉은 할머니들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수학여행에 온 듯이 깔깔깔 너무 재밌어 보인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나에게 문득 드는 생각은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 걸까.'
버스에서 내릴 때 사람마다 인사가 다르다. 기사님께서 먼저 "안녕히 가세요."라고 하면, 버스에 남아있는 할머니는 내릴 할머니에게 "다음에 만나요!"라고 하고, 내리는 할머니는 "수고하세요."라고 말한다.
이러한 말들이, 일상적인 말이라도 상대에게 쓰는 마음과 마음들이 너무나 따뜻하다.
오늘 또 이렇게 평화 전망대 앞에서 덩그러니 내려졌다. 햇볕이 너무 강했고, 눈앞의 엄청난 경사는 올라갈까 망설이기도 했지만, 나의 저울질하는 마음을 내려놓기에 큰 도전이었다.
일단 올라가는 거다.
걸으면 걸을수록 걷다 보면 고민과 생각들이 사라진다. 그래서 마음이 심란할 때는 걷는 걸 유독 좋아한다.
전망대는 제일 북한과 인접해 있는 곳이라 눈앞에 있는 물만 넘으면 북한이다. 망원경으로 보면 걸어가는 사람도, 이야기 나누는 사람도, 자전거를 탄 사람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벽에 붙은 포스터도 망원경을 통해서 보았는데, 빨강, 노랑으로 구성된 을지로 느낌의 포스터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게다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모든 집이 일렬로 정렬되어 있는 모습도 참 인상 깊었다.
이렇게 보이는데 갈 수 없고, 함께 할 수 없음에 마음이 안타까웠다.
전망대에서 다시 내려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가 예상 시간이 훌쩍 지나도 오지 않는다...!
다음 버스는 1시간 20분 뒤에 온다는데 택시가 잡힐 것 같지 않아 일단 버스 정류장에서 앉아서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지각한 것이길 바라며.
눈앞에서 많은 승용차들이 지나갔다. 이런 날은 내가 뚜벅이 여행자라는 걸 몸소 느끼는데, '오히려 이렇게 느리게 이동할 수 있어서 더 느낄 수 있는 것이 많을 거야'라며 잡생각을 넘겨버린다.
기다리는 것이 지루해질 무렵 눈앞을 지나쳤던 승용차가 급 후진을 해서 내 앞으로 왔다.
노부부께서 전망대에 도착하여 관람 후 내려올 때까지 내가 정류장에 앉아있어서 태워주고 싶다고 하셨다. 뜻밖에 친절에, 기약 없는 버스 기다림에 지쳤을 때라 목적지를 말하고는 차에 탔다.
차에 타고나서는 차 안이 새것이어서 또다시 불안함이 시작되었다. 차 안에 스티커들이 하나도 떼져 있지 않았기에, 할머니께서는 인삼차를 컵에 따라주셨는데, 따뜻한 마음마저 의심하려 드는 내가 조금 밉기 시작했다. 결국 아무 일 없이 인삼차와 각종 과자를 받으며 터미널까지 왔다.
나를 데려다주신다고 점심도 드시지 않으시고, 여행 왔다는 말에 중간에 차를 돌려 해안도로를 구경하며 터미널까지 데려다주신 노부부께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이제야 의심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오늘 들은 이야기 중 하나인데, 강화도에는 사투리가 참 많다. 특히 북한과 인접한 곳이라 북한에서 넘어오셔서 조용히 사시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어서 오시겨", "드셔 보시겨"라는 말이 특히 너무 귀여운데, 이 말을 젊은이들이 말하면 어르신들께 혼이 난다고 한다...ㅋㅋㅋㅋㅋ너무 귀엽지 아니한가.
강화도의 버스 교통은 네이버 지도가 아닌 '강화버스터미널'로 통한다. 네이버 지도에 나오지 않는 운행시간은 모두 터미널에서만 확인할 수 있기에.
걷고 기다리고 걷고, 느리게 가는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