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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냄 Oct 20. 2024

걸으며 여행하면 보이는 것들

일상 속 생각들을 곁들인

셋째 날 아침이 밝았다.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루지를 타는 날이다! 주말과 공휴일엔 줄이 길다고 하여 평일인 '금요일'만 기다렸다. 일찍 가려고 토스트 조식을 건너뛰고, 숙소를 나섰다.


소풍 가는 느낌이라 아침 일찍 문을 여는 곳은 김밥 집이라는 생각이 들어 맛집이라고 소개된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긴 애매하고 걷기엔 생각보다 먼 거리였지만, 맛집 김밥을 맛본다는 설렘을 가지고 걸어갔다.


강화에서는 걸어 다니며 이것저것 다 볼 수 있는 것이 매력인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시장도 많고! 경주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줄 서서 먹는 김밥집이라 하여 후다닥 걸어가 줄 서서 구매했다. 걸어간 것이 아까워 2줄을 포장했다. '지금 아니면 안 돼', '1개만 사긴 아까워'라는 생각들이 매번 나의 소비를 재촉하는 것 같다.


김밥 한 줄을 먹으며 다시 터미널로 가는 길. 모든 길은 터미널부터 통하기에. 오늘도 터미널로 향한다.


터미널로 가는 길에 가고 싶었던 곳들을 그냥 지나쳤다. 보고 싶지만 다른 날 가려고 계획한 것이어서 못 본 척 두 눈을 질끈 감고 지나쳤다. 나의 소비에도 두 눈을 찔끔 감는 절약 모드가 꽃피웠으면 좋겠다....!



강화에서는 큰 길로만 다녔는데(큰 길만 따라가면 다 나온다!), 쉽게 지루해지는 성격상 또 큰길로 가기에는 재미없는 느낌이라 안쪽 길로 걸었다. 숨은 길을 아는 사람인양 걷는 내 발걸음에는 자신감과 호기심이 붙어있었다. 단지 3일 차인 여행자일 뿐인데 말이다.


이렇게 발걸음을 옮긴 데에는 일상을 여행처럼 살자는 나의 마음가짐이 한몫하였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한 번씩, 늘 가던 길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간다. 새로운 길이 보이고 여행 온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다 보니 남문을 만났다. 성곽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안쪽으로 걷는 이 길이 너무나 좋았다.

나는 성곽과 도시가 어우러지는 것을 참 좋아한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있는 그 모습이 나에겐 정겨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성곽 주변을 걸으며 밤에 숙소 근처에서 보이던 불빛의 출처는 성곽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걷다 보니 파와 배추 밭 사이를 지나게 되었다. 이는 터미널에 거의 근접했다는 의미다.

강화에 와서는 매일 초록초록한 아이들을 보는데, 그 자체가 힐링이 되는 것 같다. 도시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초록색 자체만으로도 리프레쉬되는 기분이 든다.



버스 타고 루지로 가는 길. 버스 안 풍경은 어제처럼 정겹다. 오늘은 물 빠진 바다 길을 지나며 달렸는데, 동해안만 보며 자란 나는 서해안의 물 빠진 바다가 참으로 신기하다.

욕심을 조금 내어 바다 보러 갈 계획도 추가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루지에 도착했다. 뚜벅이에게 다가온 현실은...! 어제와 같은 긴 오르막길.

어제의 전망대는 경사가 가파르고 짧았다면, 오늘은 어제만큼 가파르진 않지만 길게 올라가야 했다. '이 오르막만 넘기면 루지를 탈 수 있어!'라는 마음 하나만으로 열심히 걸었다.


매번 걷거나 등산할 때 느끼는 건 인생은 늘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라는 것.


지금 좀 괜찮다 싶으면 시련 같은 오르막이 찾아오고,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못하겠다 싶으면 한줄기의 빛같이 내리막 길이 찾아온다.

이런 오르막 내리막을 평평하게 유지하는 것이 균형된 삶이 아닐까 싶다.


오르막 길의 끝에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대기 줄에 크게 당황을 했고, 아침부터 너무 더운 날씨에 또 한 번 당황했다.

여름옷은 딱 한벌 가져왔는데, 오늘 입길 잘했다 싶을 정도로 햇볕이 뜨거웠다.


기다림 끝에 입장권을 끊을 수 있었는데, '이왕 타는 거 실컷 타야지'라는 나의 생각이 3회권을 끊게 만들었다. 나의 '삼세번의 원칙'도 이 소비를 재촉하는데 힘을 보태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삼세번의 원칙'과 '럭키 세븐의 원칙'이 자리 잡았다.

3번 이상 경험을 해보고 그 후에 결정을 한다는 것과 살 것이 많거나 숫자를 고를 때에는 이왕이면 7 또는 7개 이상으로 구매한다. 무튼 이 요상한 나의 원칙은 매번 소비를 부추긴다.


루지 줄은 첫 탑승 줄과 재탑승 줄이 따로 분리가 된다.

첫 탑승 줄에서는 줄 서면서 안전에 대한 영상을 계속 보고,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서 운행법에 대한 설명과 실습을 하게 된다. 공휴일과 주말 사이에 끼인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너무 많았다.


첫 탑승 줄에서 1시간을 기다려 곤돌라를 탈 수 있었다. 첫 탑승 사람과 재탑승 사람을 나눠서 곤돌라를 태워주었는데 이것이 기다림의 원인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우르르 사람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팀별로 태웠다. 첫 탑승 시에는 그래야 한다고 직원분이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혼자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다.

 

 곤돌라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면 전망대에 가거나 루지 타는 길이 나뉘어 있다. 여기서도 첫 탑승과 재탑승 줄이 나뉘어 있다. 또 한 시간을 기다렸다. ㅋㅋㅋㅋㅋ이미 3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림의 지옥 속에서 나는 '천천히 가는 여행이야'를 속으로 외치며 꿋꿋이 기다렸다.



기다림의 끝에 루지를 탔다. 와... 진짜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좋았다. 기대한 보람이 있었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마침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여서 루지 타는 내내 나의 양 옆에 코스모스들이 활짝 피어있었다. 코스모스들이 안녕하고 손짓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많이 피어있고, 꽃들이 이뻤다.


좋은 날씨도 한몫했다.

어여쁜 코스모스와 햇살. 루지의 스피드와 함께 느껴지는 바람.

눈에 보이는 경치까지 어느 하나도 좋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정말로 너무 좋았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마저 들었다.


내려오자마자 재탑승 줄을 섰다. 사람이 많아서 재탑승할 때마다 40분 이상을 기다렸다. 기다리다 보니 우연히 내 손을 보았는데, 내 손은 무서웠다보다...ㅋㅋㅋㅋㅋ빨갛게 부어있었다. 생각보다 빠른 스피드에 어지간히 긴장했나 보다. 재탑승하면서 전망대를 구경했는데, 경치가 너무 좋았다. 곤돌라 한 번에 이렇게 전망대까지 볼 수 있다니...! 정말로 좋은 루지다...!


루지를 3번 다 타고나니 이제야 배가 고팠다. 시계를 보니 2시가 넘은 시간.

아침에 포장한 김밥을 먹었다. 특별한 맛이 있기보다는 엄마가 싸준 김밥 맛이어서 먹는 내내 소풍 온 기분이 들었다.



강화읍에서 루지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대부분 자차로 이동하기 때문에 다른 관광지와 다르게 버스 시간 안내는 없었다.

네이버 지도 앱에서도 '도착 예정 정보 없음'이라는 정보만 남겨주었기에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다 지쳐 택시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어라...? 이렇게 빨리 오다니. '이곳에서도 택시는 잘 잡히는구나'를 몸소 깨우쳤다.


강화읍에 도착하는 시간이 저녁을 먹기도 안 먹기도 애매하여, 다음 일정을 위해 미리 저녁을 먹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렇게 찾아간 김치찌개 집감자탕 집은 브레이크 타임에 걸려 패스...


브레이크 타임이 없는 육개장 집으로 가서 한 그릇을 뚝딱했다.

더위에 지쳤는데, 뜨끈한 국물을 마시니 피로가 풀리는 느낌! 크으 역시 국물이 최고야.


배가 너무 불러 주변을 걷다가 유림 상회와 소금빛 서점을 발견했다. 한옥을 반을 나누어 한쪽은 빈티지 그릇을 판매하고, 다른 한쪽은 책을 판매한다.

이미 한옥이라는 것에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한옥의 건축양식과 우리나라 전통 문양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유림 상회에 들어가자마자 빈티지한 공간에 사로잡혔다. 따뜻한 느낌과 빈티지한 느낌이 어우러지는 곳이었다. 곳곳에 주인분의 손이 안 간 곳이 없어 보이는 곳.


유럽 할머니 댁 같은 느낌의 찬장과 그릇, 주의 깊게 볼 때마다 그 그릇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말씀해 주신 덕분에 정신없이 그릇 구경을 했다.

그동안 빈티지 컵에만 관심이 가득했고, 그릇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오히려 이곳에서는 그릇이 이렇게나 이쁘게 보일 수 없다.

결국 고민고민 끝에 요거트를 담아먹을 볼을 구매했다. 여행이 끝난 지금도 이곳에서 산 요거트볼을 아까워 쓰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다.


이 날은 유독 더운 날이었는데, 더위에 지친 나를 보시고는 옆의 소금빛 서점에는 에어컨이 빵빵하니 책도 읽으며 쉬다 가라고 하셨다.


강화에는 참으로 따뜻하신 분이 많다...! 소금빛 서점으로 넘어갔는데, 이 곳은 삼면이 책들로 가득가득했다. 트렌디한 느낌보다는 따뜻한 느낌이고, 기성 출판물, 종교 관련 책이 많았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조금 쉬어 갔다.



땀을 식히고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소창 체험관이다. 아삭아삭 순무민박에 머물게 되면 소창으로 된 수건을 나누어주시는데, 금방 마르고 촉감이 편안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조금 더 tmi를 보태어 보자면, 소창은 강화의 특산물이며 과거 강화의 비단이라고 불릴 만큼 유명했다고 한다.

값싼 면직물이 수입되면서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았지만 아직 몇몇 개의 공장이 강화에서 돌아가고 있다. 이런 소창으로 만들어진 소창 수건은 세탁할수록 더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이러니 관심을 가질 수밖에..!


강화 소창 체험관에서는 소창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직접 소창 손수건을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하고 가는 것이 좋다.


소창 손수건을 만든다고 해봤자 특산물 모양의 도장을 콩콩 찍는 것일 뿐이지만, 직접 소창천을 만질 수 있고 강화의 특산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기에 좋았다.

강화 순무가 너무 귀여워서 순무 도장을 소창 손수건에 가득 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가득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도장을 찍었다!

크크 보라색 순무 너무 귀여워.


소창 체험관에서는 소창뿐만 아니라 차도 맛볼 수 있다. 차를 마실 수 있게 준비되어 있는 한옥이 이뻐 사진 찍으며 기웃대다가 "들어오셔도 돼요!"라는 직원분의 말을 듣고 들어가게 된 이곳. 자리에 앉자마자 차를 내어주시며 순무차라고 하셨다.


'보라색 순무차도 있다니..!' 아삭에서 마신 순무차(노란색)와 다른 색에 놀랐지만, 차를 컵에 따라보니 내가 알던 그 색이고 알고 있는 맛과 같아서 신기했다.

색이 어떻든 역시 순무차가 최고다. 다른 차에서 맛볼 수 없는 맛이 순무차에는 있기 때문이다.


순무차를 마시며 직원분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어떻게 혼자 여행을 오게 되었는지, 그동안 어디로 여행을 다녔었는지 등등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직원분께서 눈이 반짝반짝해지시며 본인도 혼자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여행으로 하나 되어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미 한 시간이 훌쩍..!

직원분께서는 나의 이번 강화 여행이 마지막까지 즐거운 여행이길 바란다고, 나 또한 혼자의 시간을 조만간 누리시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석모도였는데, 순무차와 함께한 즐거운 대화에 시간이 가는 줄 몰라 석모도행은 다음에 가기로 하였다.

강화에 여행 왔다고 했을 때 '여기는 가보셨어요?'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은 조양 방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양 방식으로 가는 길. 날씨가 아주 좋아서 길가의 꽃들이 너무 이뻤다. 꽃뿐만 아니라 가을임을 알게 해주는 감나무도 너무 이뻤다.

게다가 평일에 회사에 가지 않고 하늘도 보고 꽃도 보고 나무도 볼 수 있는 여유로움에 감사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동안 얼마나 하늘을 보지 않고 살았는가.

조금만 눈을 돌리면 하늘도 나무도 꽃도 볼 수 있는데 그런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않은 나에게 미안해졌다.

바쁜 순간에도 잠깐 멈춰 여유를 가지려는 마음을 조금씩 만들어보자는 다짐과 함께 조양 방직으로 향했다.


조양 방직도 예전에는 큰 공장이었다가 공장 문을 닫고, 지금은 카페로 재탄생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그때의 흔적을 조금씩 엿볼 수 있다. 예전의 건물과 소품들이 있고 빈티지 물건들을 더 가져와 꾸민 곳.

건물이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이어서 둘러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화장실 가는 길인데 가는 길이 휘황찬란하다. 말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 것이 아주 특이했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면 더 놀란다. 갤러리 같은 느낌. 하나하나 빈티지한 느낌으로 만들려고 노력했구나를 느낄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빈티지한 공장 안에서 을지로도 느낄 수 있고, 예전의 공장도 느낄 수 있으며, 공간이 엄-청 크구나를 느낄 수 있다.



엄청 걷다 보니 힘이 들어 요깃거리를 구매하고자 풍물 시장으로 갔다.

오늘은 연차를 써서 출근을 하지 않아 좋았는데, 월급날이라 월급이 들어온 걸 보니 기분이 너무 좋아서 밴댕이 무침을 포장해서 숙소로 들고 왔다.


혼자 먹기엔 양이 너무 많아서 숙소에 계신 분과 나눠먹었는데...! 와... 밴댕이 회가 너무 달고 무침에 쓰신 유자 소스가 계속 나를 먹게 만들었다ㅠ_ㅠ!!  

대구에도 무침회가 유명한데, 그 맛을 잊을 정도로 맛있었다.....!!!!

어제 같은 방을 쓰신 분이 저녁으로 밴댕이 정식을 먹고 저녁 내내 웃으셨었는데 그 웃음의 의미를 드디어 알게 되었다...!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맛... 쓰는 지금도 또 먹고 싶다!


순무차와 함께하는 회고 시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다. 지내시는 분들과 많이 친해져서 스티커도 받고 폭풍 이야기....!

이젠 회고 시간이 없으면 저녁이 허전하다. 그만큼 순무차와 함께하는 저녁 10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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