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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냄 Oct 25. 2024

탁 탁 탁 탁 칙-치익

리틀 포레스트를 꿈꾸며 요리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

탁 탁 탁 탁       

도마 위 양파 써는 소리

칙- 치익            

달궈둔 팬에 재료를 볶는 소리

고요한 집에서 들리는 주방의 소리. 오늘도 나는 요리하고 있다.


기대감 가득 안고 들어간 첫 회사.

첫 사수이자 입사 동기인 팀장님은 입사한 지 삼 일째 되던 날 나를 조용히 불러 말씀하셨다.


남직원들과 밖에서 밥 먹지 말고 여직원은 여직원들끼리 안에서 밥 먹었으면 좋겠어. 친해지고 좋잖아”


다른 팀의 여직원들과 손발을 맞춰가며 일해야 하기에 팀장님 말씀대로 회사 안에서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첫 점심 도시락은 편의점 도시락이었다. 편의점마다 각기 다른 도시락을 팔고 있어서 이것저것 맛보는 게 재미있고, 감사했다.

고시생 시절 사-오천 원대의 편의점 도시락은 사치였기에.

직장인이 되어 편의점 도시락의 사치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 그 자체였다.


감격 그 자체인 편의점 도시락을 먹은 지 십 일째 되던 날.

편의점 도시락 맛에 질리기 시작했다.

어느 도시락을 먹어도 감격의 맛이 아닌 ‘그 맛이 그 맛’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요리하기 싫어서 고시원 식사의 정석을 도시락으로 준비했다.

바로 즉석밥과 캔 참치.


반찬인 캔 참치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곁들일 수 있다.


매콤한 점심이 먹고 싶은 날엔 고추 참치를

고기가 먹고 싶은 날엔 불고기 참치를

가볍게 먹고 싶은 날엔 야채 참치를

이러나저러나 제일 무난한 맛은 바로 마요 참치!


고시원에서는 조리가 금지되었기에 자주 먹던 조합. 이 조합의 도시락도 십 일을 넘기지 못했

다.

컵라면과 김밥으로 점심을 먹으며 한 달을 버티다가 결심했다.

요리를 시작해야겠다고.

리틀 포레스트의 김태리처럼 말이다.




탁            탁            탁           탁

칼질을 하다 보면 주변은 고요해지고 온전히 도마 위 양파와 칼에만 집중하게 된다.

이 시간만큼은 나를 괴롭히는 스트레스와 고민을 잊을 수 있었다. 마음이 고요해졌다.


칙- 치익

요리 재료를 볶으며 울적한 마음과 미운 마음도 함께 볶았다.


차르륵

통깨를 뿌려 마무리할 때면 근심·걱정은 사라지고 울적한 기분도 사라졌다.


완성된 음식을 예쁜 도시락통에 담을 때면 다가올 내일에 대한 기대가 내 마음 안에서 조금씩 피어났다.



도시락을 싸는 건 흐트러진 내 마음을 싸는 건 아닐까?


이곳저곳에서 뒤엉키고 널브러진 마음들을 칼질하며 한데 모으고

안고 가지 못할 감정들을 불에 볶으며 날려 보내고

남은 마음들에 내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솔솔 뿌려 도시락을 싼다.



탁 탁 탁 탁

칙- 치 익

고요한 집에서 들리는 주방의 소리. 오늘도 나는 요리하고 있다.


오늘도 힘든 마음을 잘 걷어냈구나

도시락과 함께 내 마음을 잘 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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