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보기와는 다르게 육회를 참 좋아합니다. 육회만 전문으로 하는 식당을 찾아간 적도 있으며 축산물 온라인 마켓에 들어가면 고기는 사지 않고 육회만 주문해서 먹을 때도 있습니다. 육회에 넣어서 먹을 소스까지 직접 만들 정도니 그 사랑은 결코 작지 않죠.
그런데 이번에 발리 우붓 여행을 하면서 색다른 경험을 하나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늘 사랑하던 육회와의 재회였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몽키 포레스트 관람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힘들게 찾던 중이었습니다. 벨기에에서 온 셰프가 운영한다는 식당이 근방에 있다고 해서 그곳으로 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원래 가이드북에 있는 지도로 찾아갔지만 식당이 없어서 난감했던 차였죠. 다행히 식당이 가까운 거리로 이전했다는 사실을 알고 겨우 찾아내고야 말았습니다.
이름은 who's who
무슨 뜻인지는 모릅니다. 배가 많이 고파서 그랬는지 궁금하지도 않더라고요.
메뉴판을 보니 일반적인 인도네이사 전통음식점은 아니라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벨기에라는 단어가 떡 하니 들어가 있으니까요. 자주 들어봤던 메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오래 걸어서 꽤 힘들었던지라 아이들과 맛있는 음식이 뭐가 있는지 찾기 시작합니다.
남자 셋 모두 입맛이 까다롭지만 쇠고기가 들어간 메뉴라면 크게 호불호가 없지 않을까 싶어서 beef라는 단어가 들어간 메뉴 세 가지 모두를 주문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치킨 카레에 난이 얹어져서 나오는 메뉴를 하나 추가로 주문했죠.
시간이 지나고 세 가지 쇠고기 메뉴들이 하나씩 등장하기 시작하는 데 비주얼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웰던처럼 완전하게 익혀서 나온 음식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죠.
토스트 카니발은 바게트 위에 고기를 올려먹는 형태였습니다. 미디엄 레어에 가까운 익힘에 야채와 소스가 어우러지는 형태였는데요. 애피타이저처럼 되어 있었는데 고소한 느낌이 들어 입맛을 끄는 맛이었습니다. 애피타이저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에 나온 비프 카르파초는 그야말로 생고기를 얇게 썬 형태였죠. 소스가 달달하고 새콤한 데다 야채와 함께 먹으니 식감도 쫄깃쫄깃해서 꽤 좋았습니다. 양이 많지 않은 메뉴라 순식간에 삭제됩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나온 메뉴인 스테이크 타르타르를 보자마자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영락없는 한국의 육회와 다를 바가 없어서였죠. 계란 노른자까지 따로 주는 모습을 보면서 육회의 기원은 과연 어느 나라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궁금증까지 생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육회는 간장 양념 또는 고추장 양념 둘 중 하나로 배, 잣, 노른자와 함께 먹는 방식입니다. 스테이크 타르타르는 사진에서 보이듯 신선한 야채와 함께 구성되어 있더군요. 소스는 약간 한국에 비해서 덜 자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간 속된 표현으로 슴슴한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한국의 육회와 비교했을 때 식감은 전혀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식당을 어렵게 찾을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힘들게 찾아와서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있었죠. 그래도 막상 먹어보니 찾아온 보람은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상한 점도 있었습니다. 발리는 이슬람 문화권인 다른 인도네시아 지역과는 달리 힌두교 문화가 전파된 곳인데 쇠고기를 먹는 식당이 있는 게 이상해 보여서였죠. 맛있게 먹을 때는 신경도 안 쓰다가 먹고 나니 궁금해지더군요.
알아보니 발리에서도 쇠고기를 먹는 문화가 있다고는 합니다. 소, 특히 암소를 신처럼 숭배하는 인도의 힌두교와는 달리 발리의 힌두교는 발리 지역 고유의 전통신앙과 혼합되어 발전해서 소를 먹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발리 힌두교가 이렇게 다채롭기에 이곳에서는 힌두교 신자가 소를 먹거나 육식을 한다고 해서 문제를 삼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문화나 종교와 관련 있는 식문화는 미리 알아보고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앞으로 발리 우붓을 여행하실 계획이 있으신 분 중 이런 류의 음식을 좋아하신다면 꼭 한 번 가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카레도 맛있었거든요.
다만.. 한국처럼 음식이 빨리 나오지는 않는다는 점은 잊지 마시고요. 양도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맛은 후회 없으실 거예요.
한 줄 요약 : 인도네시아에서 발견한 한국의 맛. 인도네시아 판 육회! 니가 왜 거기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