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삐삐가 없었다면, 나는 감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 페르닐레 피셔 크리스텐센 감독
영화는자신의 집에서 아이들이 보낸 편지를 읽는 노년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으로 시작한다. 린드그렌은 2002년 별세했기 때문에 이 장면은 분명히 연출된 장면이다. 린드그렌은 편지 하나하나를 소중히 펼치고 읽는다. 어떤 편지에는 글이 있고, 또 어떤 편지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아이들의 이야기가 내레이션으로 삽입되던 중에 한 아이의 물음이 선명히 들려온다. "선생님은 아이로 오래 살지 못했는데 어떻게 아이들에 관해 그렇게 잘 쓸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이 영화는 이 질문에서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을 기점으로 영화는 노년의 린드그렌이 과거를 회상하듯, 플래시 백을 통해 우리를 그녀의 10대 시절로 데려간다. 이후의 씬들은 모두 그녀의 10대에서 20대 사이의 시절을 다룬다.
이 영화는전기 영화이지만 여느 전기 영화가 인물의 삶 전반을 다루는 것과 달리 다소 짧은 기간을 다룬다.10대 중반에서 20대 중반 사이의 6년 여의 기간이 이 영화의 타임라인이다. 영화의 제목이 '비커밍 아스트리드(Becoming Astrid)'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에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든가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을 받기 시작하는 부분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우리는 1920년대 초 스웨덴의 어느 시골 가정에서 자라던 10대 소녀 아스트리드가 6년 여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보게 된다. 사실 비교적 대중에게 덜 알려져 있던 그의 당시 삶은 전혀 녹록지 않았고 오히려 고됐다. 특히나 불가피하게 자신의 아이를 1년 여동안 만나지 못한 것은 그를 내적으로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1920년대 초, 스웨덴 시골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던 10대의 아스트리드는 글 솜씨가 알려져 지역 신문의 인턴으로 일하게 된다. 그녀는 부인과 별거 중이고 아이가 여럿인 편집장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녀가 맞닥뜨리게 되는 고난의 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임신시킨 편집장 라인홀드는 아스트리드를 책임진다 말했지만 여러 면에서 비겁함 모습을 보였고, 자신의 부모 또한 자신의 결정을 지지해주지 않음에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개선시킬 방법을 직접 찾게 된다. 그녀는 스웨덴을 떠나 익명으로 아이를 낳고 위탁보호소에 맡길 수 있는 덴마크로 향하고, 그곳에서 무사히 아이를 낳지만 가난과 궁핍에 시달리며 자신의 편이 한 명도 없는 상황에 좌절하게 된다.
그렇게 아스트리드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임신과 출산의 경험을겪으며그런 자신에게 등 돌린 무책임하고 보수적인 사회와 공동체를 겪는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에 부딪혀 좌절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속기와 타이핑을 배우며 직업 경험을 늘려 갔고, 독립해 자신의 아들 라세와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후반부에 인물의 이름을 통해 간접적으로 암시되지만, 그는 일하던 직장에서 후에 남편이 되는 스투레 린드그렌을 만나기도 한다.그의 10-20대의 삶은 치열하고도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에는 라세와 함께 살게 되고, 가족의 인정을 받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모든 일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영화 중간에 한 아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의 책에 있는 아이들은 거의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어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책에 있는 아이들은 거의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아이의 이 말은 괜히 삽입된 것이 아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작가는 자신의 삶을 반영해 작품을 만들고, 그 세계를 구축한다. 아마도 영화에서 엿볼 수 있던 그녀의 삶은 그 근간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삶의 부분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를 보던 관객은 그녀의 10-20대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영화의 말미에 가서 그녀가 겪었던 모든 고통스러운 경험들이 결국 그녀 자신이 스웨덴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가가 되는데 밑거름이 되고, 현재를 살아가는데 바탕이 된 소중한 경험들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된 경험 끝에 그녀에게는 작은 빛줄기 하나가 찾아왔고, 그녀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여 자신의 삶을 계속 살아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시작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보다도 그녀의 이름 앞에 시작된다는 의미의 '비커밍(Becoming)'을 붙인 '비커밍 아스트리드'라는 제목을갖게 된 것은 당연한 것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