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증세가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가족의 위기는 본격화된다. 단순히 요양원 비용의 문제만이 아니다. 사라져 가는 아버지의 기억에 가족의 추억은 사라지는 것만 같다. 산드라는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돌보는 건 버겁다. 다행히도 점점 지쳐가는 그녀의 곁에는 8살 난 딸과 친구 클레망이 있어 이들에게 기대 잠시 숨통을 틀 수 있다. 산드라의 아버지는 그녀와 다른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이미 진행되고 있는 병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가 가끔 머릿속에서 영화가 나온다면서 뭔가 없어진 기분, 그 비일관성에 대해 토로하는 장면은 그가 겪을 혼란스러운 상황을 잠시나마 상상하게 만든다. 동정을 결코 바라지 않던 아버지가 딸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자신을 위해 뭔갈 계속해서 해주는 것 즉, 같이 있어주는 것이지만 지쳐가는 산드라에게 이는 어쩌면 무리한 요구처럼 비친다. 모두가 입을 모아 외칠 “할 수 있을 때(후회하기 전에) 최선을 다하세요”라는 말은 진리처럼도 들리지만 지친 그를 무겁게 옥죄는 말이기도 하다.
미아 한센 로브 감독 자신이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듯 이 영화는 비슷한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관련된 감독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감독을 ‘산드라’라는 인물에 바로 투영해 보는 것은 물론 무리가 있겠지만, 바로 이전작 <베르히만 아일랜드>의 크리스와 마찬가지로 떨어뜨려놓고 볼 수도 없다. 특히나 “이 영화를 만들면서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다시 발견하고 그때의 기억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랐”다는 그의 말은 영화보다도 급작스럽게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했던 감독이 아버지를 다시금 잘 떠나보내는 계기로써의 측면에서 이 영화를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히 이것을 달성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감독이 언제나 우선시하는 삶에의 가장 진실된 시선에서의 포착은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아버지를 대하는 산드라의 선택이 바로 이것의 응축에 가깝다 볼 수 있는데 단순히 생각했을 때는, 책임보다도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따르는 그녀의 선택은 보편적 심리에 반대돼 양가감정이 들게 만드는 부분이 존재한다. 산드라는 죽음에 가까워지는 아버지를 보며 절망에 빠지면서도 많은 시간을 아버지에게 할애하려 한다. 그러나 이로 인해 자신의 삶까지 전복되고 말 상황에 처했을 때, 산드라에게 우선시되는 것은 결국 아버지보다도 자기 자신의 행복이다. 어쩌면 이기적으로 보일 수있는 선택이다.
그러나 영화는 산드라를 단순히 이기적 선택을 내리고 아버지를 떠나는 '나쁜'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과도 관련이 있는 아버지의 노트를 우연히 보고 그 안에 아버지가 끄적여둔 자서전의 초고 내용을 보고 생각에 잠기는 산드라의 모습은 그녀가 아버지를 떠난 것이 자신의 삶에서 아버지를 배제한 것이 결코 아님을 보여준다. 산드라는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행복을 위해 아버지를 떠나게 되는데 최종적으로 그녀의 이 선택은 불확실한 삶을 대하는 감독의 태도로도 읽힌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불확실한 미래와 클레망과의 또 다른 불확실한 미래 사이에 선 산드라는 자신의 삶을 위해 결정을 내린다. 무엇이 옳은지는 닥치지 전에 알 수 없지만 당장 내린 최선의 선택이다. 제목 "어느 멋진 아침(One Fine Morning)"이 가지는 미래와 희망의 의미 때문에라도 이 영화의 엔딩은 슬프거나 절망적이지 않다. 각자의 삶은 그것이 언젠가 끝날 때까지 지속될 것이고, 그들의 사랑은 여전히 그들 안에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