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시코기 Apr 28. 2023

관계를 정의 내리는 시선

<클로즈> 2022, 루카스 돈트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레오와 레미, 두 소년의 친밀한 관계는 이들이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변화한다. 서로의 집에서 서로의 가족과 함께할 때는 전혀 이상하지 않던 것들이 학교에서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하게 되면서부터 다른 아이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가 된다. 매일같이 당연스럽게 여겨지던 이들의 두터운 관계는 타인의 시선이 입혀지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친구치곤 너무 가까운 사이’로 여겨진다. 첫 등교일 자기소개 시간부터 서로에게 기대며 다정한 둘을 바라보는 같은 반 아이 시선부터 시작해 둘이 사귀는 사이냐는 다른 아이들 직접적 질문이나 보통의 남자아이들과 다른 행동을 한다며 놀리고 괴롭히는 일부 아이들은 그 정도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레오와 레미에게 직간접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존재들이다.


이들의 관계가 틀어지는 계기가 되는 주된 장소가 '학교'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전제다. 학교는 가족을 제외한 타인을 사실상 처음 마주하게 되는 공간이며, 사회화 과정의 본격적 시작과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학교라는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사회와 세상의 폭력을 처음 마주하게 되는 두렵고 무서운 곳이기도 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단지 시선일 뿐이라도 이는 다르게 가해지는 폭력이 될 수 있다. 쉽게 정의 내리고 사고의 범주 안에 있지 못한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의 시선이 말이다. 레오와 레미를 자신들과 다르게 아이들의 시선은 두 사람에게 그것이 잘못됐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고, 그중 한 사람, 레오가 레미를 스스로 멀리하게 만들었다. 같은 상황에 놓인 두 소년의 태도는 달랐다. 레오는 그러지 않길 택했고, 레미는 놀림받는 것보다도 그로 인해 자신을 배척하는 레오의 행동을 견디지 못한다.




<클로즈>는 트랜스젠더 발레리나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던 <걸>에 이은 루카스 돈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다. 감독 자신이 밝혔듯 이번 영화는 감독 자신의 유년시절 자전적 경험과도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 전작에서 감독은 영화의 초점을 온전히 주인공 '라라'에게 맞춰 그 내면의 변화를 세밀하게  따라갔다. 신체와 환경의 변화를 겪으며 혼란스러운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형식의 연출을 취하며 관객이 여성성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통받는 라라에게 간접적으로 동화되도록 만들었다. 인물을 그려내는 감독의 분명하고도 명확한 시선은 공감의 깊이를 더해 당시 많은 호평을 받았다. 감독은 <걸> 이후, 남성성과 관련된 영화 또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지금의 어린 소년들의 우정이 사회의 요구와 압박을 받게 되는 이야기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영화의 경우 전작보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이야기라는 평을 받고 있는 반면, 감독 자신은 이 영화를 정치적인 영화라 칭하는 점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만큼 이 영화는 두 소년의 친밀하고도 찬란했던 관계가 사회의 시선에 의해 어떻게 파괴될 수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레오와 레미가 함께 전쟁놀이를 하며 놀던 둘만의 요새는 둘을 지켜내지 못한다. 서로가 전부여도 다라고 할 만큼의 평화롭고 친밀했던 관계를 보여주는 초반부가 지나가고, 다른 아이의 "너희 둘이 사귀어?"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둘은 서로의 관계를 의식하게 된다. 몸장난으로 시작하던 것이 몸싸움으로 번져 서로 돌아누워 가쁜 숨을 내쉬는 장면은 묘하게 생긴 둘 사이의 거리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자신들 스스로가 그 관계를 이렇다 정의할 틈도 없이 두 사람 사이는 그렇게 점점 멀어져 간다.




이들의 다툼은 한 번 더 등장하는데 이번엔 돌이킬 수 없다. 다투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회복되던 이전과는 다르게 레오의 행동 하나에 결국 어그러지고야 만다. 먼저 간 레오를 기다리다 나중에야 학교에 도착한 레미는 화가 나 그를 마구 때리는데 이 장면은 앞선 다툼과 마찬가지로 핸드헬드로 비교적 거칠게 찍었다. 레오의 거짓말은 레미의 의심이 확신이 되도록 만들고, 레미는 결국 폭발하고야 만다. 영화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고조된 장면이다. 울분에 차 서럽게 울며 주먹을 휘두르는 레미의 얼굴만큼 현재 상황을 파악하면서도 레미의 행동까지는 예상하지 못해 당황한 레오의 얼굴이 들어온다. 당연히, 레오는 그것이 이들 관계의 마지막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레미가 보이지 않아 신경 쓰이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결국 레오는 가장 친했던 친구의 상실을 맞게 된다.


레미는 영화의 일반적인 구성을 생각한다면 정말 갑작스럽게 사라지게 되는데, 이 점이 처음엔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두 인물이 주인공인줄 알고 보던 중에 러닝타임의 반도 안 된 것 같은 시점에서 벌써 한 인물이 사라지다니. 하지만 이 영화의 방점은 이들 관계가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사회적 원인과 갑작스럽게 친구의 상실을 맞이하게 된 레오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지를 담아내는 그 과정에 있다. 꽃밭에서 함께 활짝 웃으며 달리던 두 사람은 더 이상 같이 웃을 수 없다. 함께 놀던 요새도 마찬가지다. 이젠 레오 만이 그곳에 홀로 남아있다. 영화는 레오 가족의 생업으로 보이는 화훼농사 즉, 꽃의 수확을 반복적으로 보여 주는데, 이는 레오와 레미 두 사람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꽃은 아름답게 빛나지만 동시에 쉽게 꺾일 수 있는 연약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꽃이 자라고 있는 드넓은 꽃밭은 마치 사회의 시선과 기대에 억눌리게 되는 수많은 어린 소년들을 보여주는 듯하다.


레오는 처음엔 크게 티 내지 않지만 레미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레미에 관해 좋게 얘기하는 반 아이들의 말에도 화가 난다. 나보다 뭘 안다고. 레미의 부재 만이 점점 실감 날 뿐이다. 레미를 보던 레오의 시선은 이제 레미의 엄마 소피에게로 향한다. 아마도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레미가 그렇게 됐다는 생각에. 하지만 레오는 차마 자신의 지난 행동을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아 주변을 서성일뿐이다. 학년이 다 끝날 때가 되어서야 용기를 낸다. 상처를 돌아보는 건 아프지만, 자기 자신 만이 멀어졌던 관계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에. 레오는 그렇게 소피에게 애써 숨겼던 사실을 말하며 레미와의 관계를 비로소 닫는다. 어쩌면 그럼으로써 레미와 다시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 않을까. 예상할 수 없던 친구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을 레오는 그렇게 스스로 마무리짓는다. 타인의 시선에서 시작했던 영화는 레오의 시선으로 끝을 내며 모든 과정을 지켜본 우리에게 당신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봤는지 묻는 것만 같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겁했기에 지킬 수 있던 이름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