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중입니다.

by 에메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세상은 지금처럼 빠르지 않았다.
스마트폰도 없었고, 종편 방송도 없었다.


밤중 수유를 하며 라디오를 켜놓고,
온 귀를 그 작은 스피커에 집중했다.
그때 들었던 음악, 이야기, 숨결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나는 정말 깊이 몰입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가 조금 자라
밤마다 잠을 재우려 애쓰던 시절,
아이는 잠들지 않고
나는 재우고 싶었다.
아이의 작은 가슴을 토닥이며
아이의 머리맡에 박완서의 책을 펼쳤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조차
아이의 잠을 깨울까 조심스러워
한 장 한 장,
곱씹듯 읽어 내려갔다.

그 문장들은 너무도 아름다웠고,
나는 박완서 작가님의 어린 시절에
함께 뛰어노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 시절의 나는
자극이 아닌 깊이에 머물렀다.
몰입은 자연스러웠고,
고요함은 불안이 아닌 위로였다.


하지만 요즘 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점점 더 불편하게 느껴진다.

어떤 책을 읽어도,
어떤 음악을 들어도
가만히 앉아 있으면
손은 스마트폰을 찾고,
잠깐의 정적에도
무언가를 눌러야 할 것 같은 불안이 밀려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원하는 건 정말 이 자극일까,


아니면 그저 허전함을 덮기 위한
반사적인 행동일까.”


도파민은 뇌가 우리에게 주는 보상의 신호다.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누군가에게 인정받았을 때,
작은 쾌락이 찾아올 때마다
도파민은 속삭인다.

“잘했어, 또 해봐.”


그런데 그 칭찬이 반복되다 보면
우리는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된다.

더 빠른 반응,
더 자극적인 말,
더 많은 확인.

그렇게 나는
도파민의 속도에 중독되어 가고 있었다.


처음엔 그것이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즐거움은 의무가 되었고,
자극은 필요가 되었으며,
지루함은 두려움이 되었다.


깊은 몰입이 어려워지고,
책 한 권을 끝까지 읽는 일이 버거워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불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도파민 중독은 단순한 뇌의 반응이 아니다.
것은 삶의 리듬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자극 없는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고요함 속에서 불안을 느끼며,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회피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의도적으로 지루함을 허락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멀리 두고,
산책을 하며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는 시간을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쓴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도파민이 아닌,
내 고유의 리듬을 되찾고 있다.


자극은 순간의 쾌락을 주지만,
고요함은 삶의 깊이를 만들어준다.

도파민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지만,
그 움직임이 나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도망인지,
스스로 물어볼 수 있어야 한다.


아직은 나의 도파민 중독이
완전히 치유된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병이란,
그 존재를 인지하는 순간
이미 치료의 반은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제,
도파민이 아닌 의식적인 선택으로 살아가고 싶다.
자극이 아닌 깊이,
속도가 아닌 방향,
반응이 아닌 존재로.

작가의 이전글소구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