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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피코코엄마 May 31. 2018

본편 (8): 나만 몰랐던 알러지

저는 어렸을 때부터 딱히 알러지로 인한 문제를 겪지 않으면서 커 왔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싫어서 안 먹는 편식만 여러 가지 했을 뿐이었죠. 반면에 신랑은 정말로 다양한 알러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잔디밭에도 앉으면 안 되고, 향이 강한 치즈를 먹어도 안되고, 술을 먹으면 새빨개지고,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무언가를 잘못 먹으면 여드름이 종종 나기도 하고,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어도 몸에서 뭐가 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저는 내심 '신랑은 참으로도 연약하군'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고양이를 키운다는 이야기를 처음 양가 부모님께 드렸을 때, 저희 집에서는 '털 날리는데'를 말하신 반면에 시어머님께서는 '(신랑은) 알러지가 있는데 어떡하니?'라고 하셨고요. 


과거를 회상해보면 저는 토피를 데려오자마자 첫 한 주 동안 눈물 콧물을 모두 뺐었습니다. 그러나 그땐 토피는 워낙 꾀죄죄한 고양이였고, 얼마 후에 밥도 잘 먹이고 샤워도 시켜주고 하니 토피도 깔끔해지고 저 또한 눈물 콧물이 모두 멎어서 괜찮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 후 코코가 들어왔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요. 처음 1년 반 정도는 온 가족이 다 함께 침대에서 잤고, 붙어살았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고양이부터 찾았었고, 선잠에서 깨고 있을 때 토피와 코코가 먼저 눈치를 채서 냐옹하고 울거나 귀를 깨물어서 깨워주기도 했죠. 모든 것은 청소만 잘하면 괜찮은 듯해 보였습니다. 

고양이들은 푹신푹신한곳을 좋아해서, 새끼때부터 침대에서 함께 잤었고, 때로는 가슴위에 올려놓고 재우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코앞에 털날리는 레슬링장을 제공해주기도 했구요.

하지만 결혼 준비를 위해서 한국에 한 달씩 다녀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인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애들을 데리고 돌아온 다음부터 왠지 눈이 가렵고, 자기 전과 일어난 다음에 콧물이 너무 많이 나서 침대 옆에 곽휴지가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하는 나날들이 계속되었고, 코는 항상 헐게 되었습니다. 제삼자로써 들으면 "어, 알레르기인데?"라고 생각이 바로 들었겠지만, 처음에 괜찮았던 날들만을 계속 회상하다 보니 제가 알레르기라는 걸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는 시간이 흐르고 증상이 심해지는 날과 좋아지는 날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침대에서 잘수만 있다면 잠에서 깨 눈을 뜨자마자 이런 얼굴을 볼 수 있는데, 저는 왜 고양이 알러지란 말입니까!

그리고 대망의 2017년 10월이 되었습니다. 그 해 가을, 저는 증상이 유난히 더 심해져 콧물을 너무 심하게 흘리고 있었고, 어느새 기침으로 번져나간지 1주일이 넘어, 모든 사람들이 너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참다못해 "감기인데 타이레놀 콜드만 먹고 따뜻하게 입고 자면 되지"를 외치는 저를 학교 병원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렇게 간 병원에서 코 속과 목구멍을 보자마자 수간호사 선생님이 냉정한 진단을 내려버리셨죠. "넌 알러지야... 심하다. 폐렴으로 가기 직전이네. 오늘 호흡치료받고 가라." 

그날 바로 저는 피검사를 하게 되었고, (집먼지 진드기와) 고양이 알러지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글의 흐름을 보신 분들 중 눈치를 채신 분들도 있으셨겠지만, 저는 토피에게 더 심한 알러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팅 30분전에 이게 왠말이요....!! 결국 미팅은 15분 늦췄습니다.

그런데, 아니 의사 양반 이게 무슨 말씀이오...!! 저는 분명히 남의 집 고양이도 맡아봤고, 고양이가 우글우글한 캣카페에서도 멀쩡하게 몇 번 놀아봤고, 우리 집 아들들이랑도 분명히 멀쩡하게 살았단 말입니다!!!! 그래서 얼마 뒤 찾아간 동물병원에서 수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물어봤죠. 알러지란 대체 무엇이길래, 저는 이리된 것일까요? 수의사 선생님의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고양이 알러지는 case by case다"라는 거였죠. 전반적으로 모든 고양이에게 알러지있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고양이에게 알러지가 있고 또 다른 고양이에게는 알러지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실제로 본인도 고양이를 여러 마리 데리고 있는데, 그중 몇몇에게 알러지 반응이 있으시다고 쿨하게 말하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오가다 보니 자극이 생겼다가 없었다가 하다 보니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을 수도 있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면, 의사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저희 고양이들은 침실에서 모두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알러지가 심해질 때 피할 수 있는 요새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제법 청소도 열심히 하려고 하고, 고양이 화장실 청소는 토피 코코 알러지가 없는 것 같은 남편이 대부분 맡아서 하게 되었고요 (고양이 배변물은 알러지가 있는 사람에겐 위험합니다. 산모에게도 위험하고요). 마지막으로 알러지가 심해질 때 먹고 바를 수 있는 약을 집에 제법 구축해두게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을 보기 전에는 내성이 생길까 봐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정량대로 먹으면 생각보다 내성 등의 부작용은 적다는 것을 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고, 간지럽거나 코가 아플 때마다 챙겨 먹는 것이 폐렴이나 다른 심각한 질환을 불러오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배웠으니까요. 저의 경우에는 코싹, 지르텍, alaway (안약), 그리고 어디 것인지 모르겠는 학교 처방받은 nosal spray를 다양하게 섞어 쓰는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일어나자마자 이렇게 요염 (??)한 토피의 모습을 보거나 사진을 찍을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ㅠㅠㅠ


한 줄로 결론만 말해보자면, "고양이 알러지는 심각한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맡아서 길러보기 전까지는 모른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폐렴에서 간신히 건져내진 다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참 쉽지 않는구나...'였지만, 집에 돌아와서 얼굴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에고, 결국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지만 어쩔 수 없지 뭐... 이렇게 이쁜 아들들인데 뭐.'이었습니다. 너무 심한 알러지가 있으시면 어쩔수 없이 고양이 입양이 힘드시겠지만, 저처럼 입양 후에 고양이 알러지가 축적되서 터지는 경우가 있으실텐데,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경우, 막상 알러지를 깨닫게 되고 적당한 약품들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더 이상 눈물과 콧물로 힘들지 않고 잘 살수 있더라구요. 만약 감기가 아닌 것 같은데 눈과 코가 안좋으신거 같으시면 바로 상담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잘 관리만 하신다면 오랜시간 눈물콧물을 쭉쭉 빼지 않고도, 폐렴 근처에 다가가지 않고도, 짧은 시간만에 다시 뻥 뚤린 코로 고양이 식구들과 다시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가실 수 있으실테니까요.



다음 편은 우리 둘째아들 코코의 만성질환이자 제가 브런치에 작가신청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를 말해보고자 합니다. 수컷고양이에게 상대적으로 흔한, 그러나 너무나도 어린 우리 아들이 걸릴 줄은 전혀 몰랐던, 고양이 하복부 요로계 질환 (Feline Lower Urinary Tract Disease)편을 길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20180531

토피코코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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