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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밥 Feb 15. 2024

글 쓰는 게 악몽이 되지 않으려면

첫째가 다니는 중학교에서 학부모회 임원 활동을 해왔다. 학부모회 임원은 회장, 부회장, 감사, 학년 대표들로 구성되는데 부회장을 맡아 봉사를 했다.

학년 대표도 이중으로 도맡았었는데 사연이 깊다.


원래 학년 대표를 맡았던 사람은 친하지 않지만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고 초등학교에서 경험이 있었다길래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아 열심히 해보자고 부탁했고 기꺼이 받아들여 한 학기 활동을 했다. 단 2개월 만에 관두는 일이 생겼지만 말이다.


곧 새 학기라서 많은 학부모들이 내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3월이면 학부모총회를 하고 각 반의 대표, 학년 대표를 구성해 학부모회 임원으로 발탁이 된다. 내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누군지만 보려고 총회에 참석하기도 하는데

반대표가 되면 학부모회에서 실시하는 행사에 참여하거나 반 학부모들에게 알림 사항들을 전달해야 하는 임무가 부담스러워 거의 꺼려하는 편이다.


두 달 만에 학년대표를 내려놓은 그의 이야기를 이제는 말하고 싶다.

중학교에서 학부모회 임원은 초등학교와 다르다.

성적이 매겨지는 시험을 치르고 곧장 입시와도 직결되는 일에다 오줌똥 못 가리는 나이의 아이보다 훨씬 신경 쓸 일이 많다.

학부모회에서 행사하는 학부모대상 교육이나 대의원회 알림이 있을 땐 학년 대표들이 각 학년의 반대표들에게 공지사항을 전달하는데 약간의 글쓰기가 들어간다.

보통은 회장이 공지하는 내용을 복사해서 붙이기도 하지만 각 학년의 내용에 맞게 재구성이 필요할 때도 있기 때문에 재공지하는 사람의 일종의 센스랄까.


두 달 만에 직을 내려놓은 그는 심하게 나를 두려워했다. 부회장으로서 회장을 대신해 공지사항을 내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학년에 맞게 글을 재구성하라는 전달이 스트레스였다고 했다.


학생들의 봉사활동 신청이나 학부모 연수 신청을 위한 명단 작성에 한글 파일로 요청을 하면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서 못한다고 쩔쩔맸다.

지인이 가르쳐주어 어찌어찌 제출은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자기는 글 쓰는 실력도 없고

잘 쓰지도 못하니까 점점 자신감도 떨어지고

머리도 아프고 공황장애까지 올 것 같다며

밤에 잠을 못 잘 만큼 힘들다고 토로하며

못하겠다고 찾아왔다.

"너는 글 잘 쓰니까 이런게 하나도 안 힘들지. 나는 안그래. "하면서 통곡을 했던 그가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순간 당황스럽고 내가 힘들게 만든 장본인인 것 같아 처음엔 죄책감이 들었다. 사람이 병까지 얻었다는데 도저히 말릴 수 없어서 받아들이고

임원들과 상의 후에 내가 학년 대표까지 겸직하기로 결정했다.


어쩌자고 나는 그를 믿음직스럽게 본 걸까 스스로 책망했다가, 무책임하게 나오는 그의 행동을 욕하기도 했다. 사람이 재산이란 말이 있는데

나는 옆에 사람을 두지 못하는 그릇이군, 하는 자책이 오래갔다.


글쓰기는 일상에 빠지지 않는 분야다.

재능과 노력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답하고 싶다.

내가 보기엔 시간과 열정을 적절히 관리할 줄 아는 것이다. 대단한 공모전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요, 점수를 필요로 하는 학생의 수행평가도 아니요, 지인과 약속을 잡더라도 적당한 단어를 골라 조합해야 하는 게 글이다. 잘 쓰는 재능이 꼭 필요할까? 재능은 한 분야에 극상위권 1%에게 붙일 수 있는 단어가 아닐까?


나는 사람들이 평범하게 글을 쓰길 바란다.

잘 팔리는 글을 위한 템플릿에 맞춰 자기 생각조차

남의 생각에 끼워 넣는 게 아니라

오직 내 경험에 의해, 내가 지을 수 있는 단어의 합을 생각하며 편안하게, 평범하게 쓰는 연습을 하면 좋겠다.

아는 단어가 없다면 어휘를 익히면 되고 공부가 필요하면 했으면 좋겠다. 몇 권의 책을 통해 습득하는 방법도 있다.

처음부터 긴 글이나 설득하는 글을 휘황찬란하게 쓰지 못하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줄평이나 독후감을 쓰는 것도 좋다. 별일 아닌 것 같지만 기록용으로 일기를 써보는 것도 좋다.

일기라면 진정 평범한 이야기를 쓰는 기초가 아니겠는가.


그의 고충을 듣고 오래 생각했다. 사람들은 진짜 글쓰는 걸 싫어하는 구나,어렵게 생각하는구나를.

글은 잘 쓰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그렇게 내 주위엔 글쓰고 책 내는 사람이 많은걸까?

재능보다는 평범하게 쓰기 시작했던 글이 결국엔 넓은 바다로 나와 책이라는 결과물까지 만들어진것이다.



막연한 글쓰기는 늘 버겁다. 오늘부터 하루의 한 순간을 잡아 짧은 일기를 남겨보는게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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