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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밥 May 15. 2024

우리를 기록하다

두 달 전 3월, 엄마의 유일한 가족인 엄마의 언니를 양평에서 데려왔다.

이유는 집안에 쓰러져 있는 걸 이웃이 발견해 병원에 이송됐고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는 병원의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한텐 하나뿐인 이모이고 밝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조카들에게

물질적 지원은 없었지만 마음을 안아주는 어른 중 한 명이었다.


올해 80세인 이모는 여러 사정으로 인해 혼자 산다. 엄마 말에 따르면 어려서는 자유로운 영혼에 사람들 사귀는 걸 좋아했다고 했다. 상고를 졸업해 농협에서도 일을 할 만큼 똑똑했고 미모 또한 출중하다. 지금도 이모 젊을 때 사진을 보면 인기가 없을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누구의 간섭받기를 싫어하고 혼자 시간의 구애 없이 자유롭게 살던 이모는 그 경계를 놓치고 말았다. 병원 응급실에서 데려가라는 연락을 받고 양평 이모집을 간 날 그동안 집 안을 들여다봤더니

말이 안 나올 만큼 엉망이었다.

키우던 개와 고양이와 자연인처럼 어울려 지낸 모습이다. 온갖 살림도구는 정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청소는 당연하고 이모의 위생 상태까지 위험 수준이었다. 혼자 두었다간 언제 죽어도

모를 상황이라 급하게 입소 가능한 요양원을 찾았다.


당시엔 이모가 정신이 혼미해서 내가 자기 동생인 줄 알고 엄마의 이름을 불러대며 계속 알 수 없는 말을 꺼냈다. 아마 자신이 응급실에 다녀왔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은듯했다.

얼마동안 씻지 못했는지 떡진 머리, 동물과 엉켜 지내서 몸에 베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요양원에 도착해 목욕부터 시켜주었는데

나는 물론이고 엄마도 하나뿐인 언니가 이런 모습으로 발견돼 자신이 앞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런 엄마를 당장 위로하거나 마음 단단히 먹자는 말을 할 여유가 없었다.


이모는 치매라고 했다. 10년 이상 다닌 병원에서 최근 1년간 이모가 진료를 보러 오지 않았다고 한다. 3년 전부터 인지기능이 떨어져 보였고 이미 뇌경색 약을 드시고 있던 터라 약을 더 보완했는데 치매가 진행된 것 같다며 약을 바꿔주었다.


이모를 데려올 때만 해도 예상할 수 없던 일들이 매일 반복되어 일어난다. 한 가지 일에 집착해서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우기고 고집 피우면 우린 설명하고 타이른다. 너희들이 나를 어떻게 아냐고 화도 내고 자긴 양평 집에 가서 개랑 고양이 돌보며 자유롭게 살 거라고, 요양원에서 나가면 그만이라고 한다.

엄마는 두 달 만에 지쳐가는 중이다. 하나뿐인 혈육이지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어째서 나를 도와주진 못하고 남은 삶을 평안하게 살 수 없게 괴로움을 주는지 모르겠다고.



달 후에야 그날의 일을 하나씩 꺼내 정리하려고 하니

어느 것부터 옮겨야 좋을지 모르겠다. 고르고 고른 문장이 혹여

우리 가족을 가십거리로 만드는 일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도 앞선다. 솔직한 심정으로.

한편으론 기록해두지 않으면 훗날 지금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을

오래되어 기억이 왜곡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남겨두려고 한다.

조금의 거짓도 없이 담담하게 우리의 마음을 고스란히 남겨보고 싶다.


마음이 곧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 같은 엄마와 자신에게 닥친 현실이 뭔지도 모르고 자유롭게 살았던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려고만 하는 아픈 이모, 둘 다 행복하기만 바라는 우리들의 마음이 동그랗게 모이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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