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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의달빛정원 Aug 24. 2018

누가 권 여사님을 바꿀 수 있을까?  

# 에픽테토스가 말하는 '통제에 관한 오류'


<삶을 사랑하는 기술> / 줄스 에번스 지음 / 더퀘스트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은 권 여사님이다.


권 여사님의 취미는 사재기이다. 

그분의 살림 공간주방부터 거실까지 비누, 세제, 반찬통 등으로 가득해서 다이소나 다름없다. 마트의 '1+1 제품'도 놓치지 않는다. 사는 건 좋아하지만 정리에는 관심이 없어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르고 산다. 그래서 지난 설에 사드린 홍삼 세트를 다시 집어 들고 와도 티가 안 난다. 장을 볼 때는 당신보다 남의 필요가 먼저다. 물건을 보는 것과 동시에 필요한 사람을 떠올린다. 혼자 계신 늙은 시누이(나에겐 고모)가 입을 고무줄 면 팬티, 올케(나에겐 외숙모)한테 맞을 것 같은 2XL 바지, 보험 계약을 해준 동네 아저씨네 집에 없던 부채, 암 투병 중인 조카며느리한테 보낼 된장 담을 통... 그 짧은 시간에 이런 걸 생각해 내는 권 여사님은 초능력자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대단한 엄마'의 '괜찮은 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그분들로부터 떡고물을 얻었다.


누군가를 '잘 먹이는 것'은 권 여사님의 존재 이유다.

혈당 수치가 300이 넘는 아버지한테 바나나 우유를 한 컵 갈아드리고, '아버지가 좋아하신다'고 칼국숫집을 찾는다. 당신이 만든 끝내주는 된장 찌개가 남으면 아깝다고 밥을 더 푸신다. 아버지의 병이 심해지기 전까지 시골 창고에는 소주 박스가 쌓여 있고, 사위들이 내려가면 기절할 때까지 권하신다. 물주(物主)인 작은 딸이 철마다 사드리는 멋진 옷을 두고, 아무거나 걸치고 상경해서 그 딸을 당황스럽게 한다. 어릴 때부터 익숙한 권 여사님의 이런 습관 때문에, 나는 중학교 때 합창부에서 "Mother of mind"를 부르다가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울었다. "제발 우리 엄마에게서 이런 느낌이 나게 해 달라고~."


권 여사님의 삶에서 계획은 불필요하다.

권 여사님은 운전 중에도 무슨 생각이 나면 자주 핸들을 꺾는다. 그래서 함께 탔던 올케와 각자 발목에 철심을 박고 한 달 동안 같은 병실에서 지내며 'Soulmate'가 되었다. 작년 6월 말, 새벽에 마당을 나선 권 여사님의 눈에 예쁜 야생화 물결이 포착되었다. 권 여사님은 그 순간 동생이 있는 강원도 산사에 꽃을 전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오르막길에서 거북이 운전하는 대형 트럭을 치울 수 없으니 이번에도 핸들을 꺾었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량과 충돌 후 찌그러진 차에서 구조된 권 여사님은 갈비뼈 세대가 부러지고, 장이 파열되었다. 6개월 동안 생사를 오가던 그 사고로, 나는 원주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 앞에서 수건이 다 젖도록 꺽꺽 울어대며 그동안의 소홀함을 반성했다. 또한 서로 연락이 뜸하던 친척들도 대학병원에 소환되어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나는 권 여사님을 '내 식대로' 바꾸고 싶었다.

나는 권 여사님이 학교로 들고 오던 찐빵이 담긴 검정 비닐봉지가 교감의 마음을 움직이는 하얀 봉투이길 바랐다. 보험료를 받으러 온 시내를 달리던 오토바이는 부잣집 친구네 봉고차였으면 했다. 창고에 이리저리 박혀있는 물건들을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하는 미니멀리즘 실천가이길 바랐다. 전화로 당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딱 끊지 않고, "요즘 어떠니~?" 하고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빈 그릇이길 바랐다. 화장품 뚜껑이 늘 열려 있는 대신, 정돈된 화장대에 앉아 거울을 바라보는 여성이길 원했다. 개인 분석을 받을 때, 오랜 세션을 권 여사님 때문에 울면서 골머리 썩는 나한테 분석가 선생님이 물었다.


"그래서... 엄마를 어떻게 바꾸고 싶었어요?"  



통제에 관한 오류가 낳는 두가지 실수

로마의 노예 철학자인 에픽테토스는 세상에 두 가지 영역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제1 영역"은 자신의 신념과 태도처럼 우리가 자주권을 가질 수 있는 영역이다. "제2 영역"은 재산, 명성, 직업, 부모, 친구들, 직장 동료와 상사, 날씨, 과거와 미래 등 인간이 통제할 수 없고 자주권을 가질 수 없는 외부의 일들을 말한다. 에픽테토스는 인간이 우리의 통제하에 있는 "제1 영역"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고, 통제할 수 없는 "제2 영역"에 있는 것을 통제하려 하기 때문에 수많은 고통을 경험한다고 한다. 즉, 자신의 생각과 믿음에는 책임을 지지 않고, 그 대신 외부 세계(부모, 친구, 연인, 상사, 경제, 환경, 계급제도 등)의 탓으로 돌리고, 다시 한번 괴로워하고 무력감을 느끼고 자제력을 잃고 상황에 휘둘린다고 한다. 나는 권 여사님, 그러니까 엄마를 통제하고 내 식대로 바꾸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내가 할 일은 "제1 영역"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절대 타인을 통제하려 들어서도 안 된다. 입장을 바꿔서, 누군가 나를 자기 식대로 통제하고 바꾸고 싶어 작정하고 덤빈다면 어떨 것 같은가.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을 주소서.

권 여사님의 오지랖과 산만한 양육에 어린 시절의 나는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여러 친척들이 나를 예뻐해 주시고, 온 마을이 함께 나를 키워주신 "덕분에", 케이프 타운에서 온 원어민 가족과도 금방 친구 먹을 수 있는 친화력의 소지자가 되었다. 권 여사님의 마당발은 중매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내가 만나는 담임 선생님들도 그 레이다망에 있었기에, 나는 수업 시간마다 얼굴을 책으로 가려야 했다. 그러나 "덕분에" 지금도 그분들한테 명절 인사를 받고 있으며, 우리도 덩달아 특산품을 얻어먹고 있다. 권 여사님이 만나는 사람들은 학생 간부를 맡고 있던 사춘기 여학생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특히, '비너스' 속옷 가게 아줌마는 보험료를 주지 않고 자기 딸 자랑으로 시간을 끌었다. "덕분에" 나는 '돈 많고  시간 많은 년'들의 딸들보다 오래 공부를 하는 기회를 얻었다. 권 여사님은 33년 동안 우체국을 다닌 "덕분에", 자식들이 못 보내주는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씩씩하고 당찬 유전자를 물려준 권여사님 "덕분에", 나는 지금도 활기차게 인생을 살아간다.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한 나만의 방법

나는 권 여사님을 바꾸고 싶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과 돈을 들여 깨달은 게 있다. 그것은 내가 권 여사님을 절대 바꿀 수 없다는 것과, 그분을 바라보는 내 생각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내 신념과 태도에 집중하자. 그리고 외부의 일들은 매우 제한적으로 통제할 수밖에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이것이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한 나만의 Know-how다.


권 여사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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