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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HY Nov 12. 2019

여행에 공짜는 없다.

호의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남미까지 정복한 우리에게 아프리카가 남았다.

스페인 마드리드를 떠나 모로코 탕헤르에 도착했다. 생애 첫 아프리카 대륙을 드디어 밟게 되었다.


모로코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 우리가 모로코를 가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 사하라 사막이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처럼. 그 외엔 모로코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모로코를 여행하는 한국인이 그리 많지 않아서 일까. 모로코에 대한 여행 정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모로코 관련 카페에서 '일행을 구한다는 글'이나 '다녀온 후기'들을 정독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여행자들에게 친절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특히, 영어를 사용하며 다가오는 사람. 친절하게 영어를 쓰며 다가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여행자를 상대로 돈을 버는 '삐끼'라는 것이다.


'Can you speak ENGLISH?'으로 시작해서 '도움이 필요하니?'라던가 '내가 길 안내해 줄게', '어디로 가는 거지? 나만 따라와' 등등. 이런 비슷한 말이 나온다면, 그 끝에는 '자 이제 TIP 줘.'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스멀스멀 쿠바에서의 기억(악몽까진 아니지만,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이 새어 나왔다. 거리를 걷는 중간중간에도 끊임없는 '치노, 치나'(중국인을 뜻하는 스페인어)하며 우릴 부르던 사람들. 방문 때마다 달라지는 가격과 흥정, 돈 계산으로 하루의 시작을 실랑이로 해야 했던 쿠바.


모로코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몰아쳤다. 그래도 우린 남미와 쿠바 모두 겪었잖아. 힘들겠지만, 긴장하고 각자에게 집중한다면 아무 문제없을 거야.


서로를 다독이며, 모로코 탕헤르 공항에 내렸다. 보통 공항에서 택시를 타는 순간부터 긴장이 시작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미리 숙소에 연락해 픽업을 요청해둔 상태였기 때문에, 미리 마중 나와 있는 사람을 따라 픽업 차량에 올랐다.


그런데.. 픽업 차량도 택시??? 라니. 흠. 아무 일도 없겠지만, 급 긴장되기 시작했다. 갑자기 가격을 바꿔서 말하면 어떡하지. 내리는 순간 짐을 들어주겠다고 사람들이 몰려오면 어떡하지.(실제로 쿠바에서 택시에 내리자마자 사방에서 짐을 들어주겠다며 달려들었다;;)


긴장+걱정을 하고 있던 중 아니나 다를까. 도착하기 바로 전 코너에서 택시 운전사의 연락을 받고 한 소년이 택시에 올랐다. 그 소년은 자신을 호스텔 직원이라며 영어로 유창하게 소개했다. '웰컴 투 모로코~!' 하면서. 문득 떠올랐다. 영어를 사용하며 친절하게 다가오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카페 글이.



설마 했던 일이 일어난 건가. 해맑게 웃는 그 소년이 괜히 의심돼서 우리는 인사도 제대로 안 했다. 갖고 있던 가방을 더 내쪽으로 끌어안고 절대 안 뺏길 거라고 서로 눈빛으로 다짐했다.


호스텔 근처. 택시 운전기사는 이 소년이 호스텔까지 잘 안내해 줄 거라며 엄지 척! 하고 우리를 내려주고 사라졌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미로처럼 복잡해 여행자만으론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호스텔 직원이 찾아온 거라고 의심하고 있는 우리에게 설명해주었다.


소년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가방을 들어주겠다며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우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무시했다. 소년은 여기서부터는 길도 어렵고, 위험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꼭 자기만 보라고 했다. 절대 스마트폰을 꺼내서 지도를 보지 말라고 했다. 소매치기당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린 그의 말을 무시했다. 짐은 절대적으로 우리가 들었고, 그가 안내하는 길보다는 스마트폰의 지도를 의지해서 갔다. 소년이 앞장서서 안내했지만 우리는 눈을 마주치지도, 대답도 뜨뜻미지근하게 하면서 길에만 집중했다.


좁은 골목골목을 걸어 드디어 숙소 앞에 도착했다. 소년은 투어의 마지막인 것처럼 안내 멘트를 날렸다. '좋은 하루 보내. 그리고 나 이 앞에서 항상 너네를 기다리고 있을게.' 자신은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집에서 살고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나 자기를 찾으라고 했다. 그러고는 인사를 하고 우리를 쿨하게 숙소 안으로 보내줬다.


응? 뭔가 허전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호스텔 직원이었던 건가? Tip을 달라고 떼쓰는 것을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뭔가 심심한 끝 맛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소년이 베푼 호의를 몰라준 채 너무 매몰차게 온 건 아닌가.


하지만 500일 동안 세계여행을 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공짜 호의'에 뒷걸음치게 되었다. 워낙 다양한 방법(?)으로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 호의가 나에게 어떻게 돌아올지 모르는 일이기에 더욱더 조심하게 되었다. 선의라고 할지라도 한순간에 최악의 상황으로 바뀔 수 있으니.


여행을 하면서, 어느샌가 과한 호의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경계심이 오히려 여행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건 아닐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좋은 마음으로 좋은 기분으로 찾은 곳인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당했던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래. 어찌 됐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야. 베풀어준 호의는...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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