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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스마 Jun 08. 2021

부동적(不動的) 우리

OurR(아월), "can't"

그 어린 날 타버린 마음을 
우린 따라가 안아줄 거야


이제 움직일까? 아니 가만히 있고 싶어


OurR(아월) - 새(Live) @OurR Rooftop Parking lot Concert


움직임은 시간을 담는대서 출발한다. 모든 움직임에는 시간이 소모되고 사람이라면 소모된 시간만큼 성장 또는 늙음을 얻는다. 어느 정도 움직임이 축적된 사람들은 더 이상 움직임을 통해 시간을 소모시키지 않길 바란다. 반대로 과거 나의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역행하기를 바란다. 다시 그때의 움직임을 재현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일종의 추억으로 내가 가만히 있음으로 시간이 멈춰질 것 같은 착각을 심어준다. 대부분은 그것이 착각임을 알고 있음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고 매개체를 통해 추억 그리고 과거를 소환한다. 어쩌면 그런 과정은 꿈을 꾸는 것과 비슷해서 몽환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며 여러 갈래로 뒤틀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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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적(不動的) 우리


음악에서 '나'와 '우리'를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겠지만 내가 선호하는 방식은 나의 부동성을 표현한 작품이다. 여기에는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식의 포스트 펑크가 주로 지니는 무기력함이 대표적일 것이고, 그 단계를 넘어서 라디오헤드(Radiohead)처럼 높은 곳에서 또는 먼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자세 역시 대표적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면 혼란한 공간 가운데 있는 '나'를 표현한 노이즈 밴드들이 최근에 많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앨범을 낸 스퀴드(Squid)나 아이들스(Idles)라는 밴드가 비슷할 부류에 속할 것이다.


2018년 데뷔한 아월(OurR)은 위의 지점에서 부동적인 나의 관점을 지는 밴드 중에 하나이다. 위에서 나열된 밴드들이 주로 추구하는 포스트 펑크 계열의 음악과는 사뭇 다르지만 노이즈적인 측면에서는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다. 신스팝과 노이즈 록의 그 어중간인데 이는 슈게이징보다는 뚜렷하며 노이즈록 보다는 덜 과격하다. 흔히 쓰는 말로 복합적인 사운드를 향유하면서도 팝적인 말랑말랑함은 놓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신스 리듬에 아무래도 강력한 기타 사운드를 입혔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독특할 수 있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익숙한 느낌으로 가득 찬다. 그것이 아월의 특징이다.


이러한 사운드의 특징은 앨범의 오프닝 트랙 <새>에서 돋보인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트랙 중에 하나이고 기타 사운드를 좋아하는 대중들에게는 이 곡이 주는 느낌이 매우 강렬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운드는 무기력의 환상으로 가사와 상충되면서 곡을 새롭게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롭다.


<새>는 '새벽'을 노래하고 '아침 노을'을 마주하며 '날갯짓'을 상상한다. 어미는 '~거야', '~것 같아'와 같은 현재가 아닌 가정을 하고 있으며 결국 내가 하는 것은 보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어린 날'을 이야기하고 '위로'를 원하는 것이 전부이다. 특히 이 가사 부분은 곡의 코러스 부분인데, 서정성을 극대화하고 '나'의 무기력함을 고조시킨다는 점에서 곡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그리고 수미상관적인 음악에서의 전통적인 요소를 넣어 마치 꿈에서 깨어나는 듯한 환상까지 들려주는데 성공한다.


멍 M/V


앨범 타이틀곡 <멍>은 <새>보다 잔잔한 곡으로 들린다. 이는 기타 사운드보다는 신스 사운드에 신경을 썼으며, 아무래도 타이틀곡이다 보니 팝적인 구조를 차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벌스와 프리 코러스-코러스의 구분이 명확하며 큰 반전을 곡 내에서는 넣지 않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멍'이라는 단어로 다양한 매력을 뽐내고 있다는 점은 재밌다. 멍은 출혈을 통해 생긴 멍일 수도 있고, 멍 때린다고 할 때 멍일 수 있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 '멍'은 '망치다'로 변하기도 하고 '멍청하다'로 변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사고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저 멍하니 보고 있다'라는 부동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렇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멍 때리면서 상상하는 것 밖에 없다. 멍은 멍을 낳고 새로운 멍은 또 멍을 낳는다. 꿈을 꾸었지만 나는 이미 그것이 사라질 것임을 알고 있다. 이어지는 <우물>은 이러한 자세가 더욱 심화된다. 이 곡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물에 갇혀 그저 기다릴 뿐이다. 누군가 끌어올려 주길 기다린다. 매번 울고 있지만 내가 살아있음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물 안에서 타인들은 서로를 밟고 올라가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그대로 가만히 기다릴 뿐이다. 


<Citronella>에 이르면 향기를 이야기한다. 오래 남는 향기를 과거를 함유하고 있음이 맞다. 이 곡의 단어들은 대부분 과거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거들은 여운을 남기며 떠난다. '어쩌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이라는 말. 그리고 동시에 '그 안에 우린 아주 오래 남아있을 거야'라는 말을 통해 부동적으로 바라볼 뿐이다. 이 곡은 오프닝 트랙 <새>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할 때 신스 사운드와 기타 사운드가 겹쳐지게끔 연주하는 특징이 있는데 이 곡 역시 그러한 스타일을 차용한다. 아월에게 노이즈 함은 어쩌면 현실과 과거가 교착될 때 나타나는 혼란스러움 아니었을까.


아월은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를 가만히 앉아 들려주었다. 


그렇기에 새벽의 노래라고 해야 할까. 아월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가사처럼 나도 가만히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꿈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다만, '부동의 자세'가 '무기력함'과 무슨 차이가 있냐고 물어볼 수 있다. 사실 큰 차이는 없다. '그래도 ~ 할 거야'가 남아 있는 것이 부동의 자세와 가깝다. 무기력은 그것조차 남아있지 않는다. 아직은 나에 후회도 있고, 생각하고픈 기억도 있고, 꺼내보고 싶은 미래도 있다. 부동의 자세에서 잠깐의 꿈을 꾸고 그걸로 잠깐 미소 지을 수 있는 것. 아직 무기력하기에는 세상은 볼 것이 많으니까. 어쩌면 현대인이 취할 수 있는 자세적 희망에 가까울 것이다.




기타 사운드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아월의 방식이 상당히 마음에 들 것이다. 그리고 보컬은 기타의 울부짖음에 응답하기에 극적인 사운드에 목말랐던 분들에게는 특히 소개 주고 싶은 밴드이다.


원글 :

https://blog.naver.com/ryc3030/222389168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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